유럽연합(EU)이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에서 동물실험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로드맵을 가동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화장품 안전성 평가를 중심으로 동물대체시험법 정비가 이어지고 있다. 동물실험을 즉시 전면 중단하는 방식보다는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대체 방법을 개발·검증하고 규제 체계에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전환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EU 집행위원회는 6월 1일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기 위한 로드맵’을 채택했다. 산업용 화학물질뿐 아니라 의약품과 식품첨가물 등 여러 규제 영역을 포괄하며, 대체시험법으로 전환하기 위한 30여 개 권고 사항을 담았다.
EU의 방향은 동물실험을 일괄적으로 없애는 데 그치지 않는다. 비동물 시험법의 개발과 검증, 규제기관의 수용, 관련 데이터 활용 체계를 함께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EU는 기존에도 동물실험을 가능한 한 대체·감소·개선하는 이른바 ‘3R’ 원칙을 적용해 왔으며, 상당수 화학물질 관련 제도에서는 동물실험을 최후 수단으로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화장품 분야를 중심으로 관련 시험법이 잇따라 정비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7월 인체피부모델을 이용한 광독성 동물대체시험법 가이드라인을 고시한 데 이어 안 유해성을 평가하는 단시간 노출법(STE) 가이드라인을 정비했다. 8월에는 인체 세포주 활성화 방법(h-CLAT)을 활용한 피부감작성 동물대체시험법 가이드라인도 공개했다.
다만 ‘동물대체시험법’이 모두 동물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시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화장품법은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실험방법뿐 아니라 불가피하게 동물을 이용하더라도 사용 개체 수를 줄이거나 고통을 경감하는 방법까지 동물대체시험법의 범위에 포함한다. 실제 전환 수준을 판단할 때는 가이드라인의 숫자보다 어떤 안전성 평가 영역에서 동물 사용을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국내 화장품법은 동물실험을 실시한 화장품이나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로 제조·수입한 화장품의 유통·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그러나 예외도 남아 있다. 보존제·색소·자외선차단제 등의 사용기준이나 위해평가를 위해 필요한 경우, 인정된 동물대체시험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수출 상대국 법령상 동물실험이 필요한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법령에 따라 동물실험으로 개발된 원료를 사용하는 경우와 대체시험을 실시하기 곤란해 식약처가 정한 경우도 예외에 포함된다. 현행 제도는 모든 화장품 관련 동물실험을 일률적으로 금지하기보다 유통·판매 제한을 기본으로 두면서 안전성 평가와 국제 규제 등에 필요한 예외를 인정하는 구조다.
EU와 한국 모두 대체시험법 확대라는 방향은 같지만 접근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EU의 올해 로드맵은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 전반을 대상으로 비동물 접근법의 규제 수용 체계를 장기적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내에서는 화장품법의 유통·판매 제한과 개별 안전성 평가에 활용할 대체시험 가이드라인 확충이 병행되고 있다.
소비자에게는 ‘비건’과 ‘동물실험 배제’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건 화장품은 주로 동물 유래 원료의 사용 여부와 연결되는 반면 동물실험 여부는 별도의 시험·공급망·인증 기준과 관련될 수 있다. 제품에 비건 관련 표시가 있다고 해서 동물실험 여부까지 같은 범위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실험을 줄이는 전환의 속도는 결국 대체시험법을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뿐 아니라 해당 방법이 안전성 평가에 활용할 만큼 검증되고 실제 규제 절차에서 인정되는지에 달려 있다. EU가 광범위한 규제 체계 전환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에서도 최근 시험법 정비가 이어지면서 향후 적용 영역 확대와 기존 예외 범위의 변화가 주요 관찰 지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