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재활용 쉬운 페트병, 다시 병이 되기까지

  • 등록 2026.10.01 19: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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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 경로·품질 검증·원료 수요의 연결

투명 페트병과 재생 원료

 

재활용하기 쉽게 만든 페트병이 사용 후 다시 식품용 병의 원료가 되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설계 단계의 재활용 용이성 평가에 더해 수거·선별 경로와 재생 공정, 식품 접촉 용도에 맞는 안전성 검증, 완성된 원료를 실제로 사용하는 제조사의 수요가 이어져야 한다.

 

국내 제도는 이 과정을 서로 다른 기준으로 관리한다. 포장재 등급은 설계를 평가하고, 식품용 재생원료 기준은 투입 원료와 공정을 관리하며, 사용의무 제도는 새 제품에 재생원료가 들어가는 양을 다룬다. 이 차이를 살피면 분리배출 이후 어디에서 품질과 거래 조건이 중요해지는지 드러난다.

 

■ 설계 등급이 보여주는 것과 남겨두는 것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는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할 때부터 재활용하기 쉬운 구조를 고려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평가결과는 재활용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높은 등급은 해당 포장재의 구조적 장점을 보여주지만, 소비 뒤 그 병이 어느 시설에서 어떻게 처리됐는지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제품의 설계 특성과 폐기 후의 실제 이동 경로는 각각 확인해야 할 정보다. 재활용하기 쉬운 병이라도 수거·선별 이후 식품용 원료 생산에 적합한 흐름으로 연결돼야 병에서 병으로 돌아오는 순환이 가능하다.

 

정책 성과를 설계 등급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산자가 재질과 구조를 개선하는 일, 수거·선별업자가 원료를 구분해 관리하는 일, 제조사가 재생원료를 투입하는 일은 연결돼 있지만 담당 주체와 확인 자료가 다르다.

 

■ 별도 수거와 혼합 수거, 같은 원료가 되는 조건

 

2026년 7월 27일 시행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현행 ‘식품용기 사용 재생원료 기준’은 식품용으로 쓰였던 PET 재질의 병 모양 포장재를 식품용 포장재로 물리적 재활용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같은 PET라는 이유만으로 병이 아닌 용기나 비식품용 포장까지 동일하게 취급하는 기준은 아니다.

 

고시는 별도 수거와 혼합 수거 경로를 나눠 선별·재활용사업자의 준수사항을 정한다. 혼합 수거된 무색 식음료 페트병도 정해진 경로와 공정 기준을 충족하면 식품용 원료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반입된 원료가 다른 폐합성수지 등과 섞이지 않도록 보관하고, 별도의 재활용설비를 갖추는 조건이 붙는다.

 

혼합 수거 경로의 재활용설비에는 뚜껑·라벨 제거, 광학선별, 분쇄, 비중선별, 세척·헹굼, 탈수·건조, 먼지와 금속 제거 시설 등이 포함된다. 생산 원료는 원칙적으로 월 1회 공인시험분석기관에 품질시험을 의뢰해 결과를 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유통지원센터 회원사는 센터의 확인결과로 갈음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모아 온 병의 양과 식품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원료의 양을 구분하는 일이다. 혼합 수거 경로가 있다는 사실도 가정의 분리배출 방법을 임의로 바꿔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해당 규정은 시설이 어떤 원료를 어떤 조건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정한다.

 

■ 원료 품질과 식품 안전성은 각각 검증

 

원료의 품질은 겉보기만으로 판정하지 않는다. 현행 고시의 재생원료 품질기준은 라벨 등 이물질을 원료 1kg당 200mg 이하, 폴리염화비닐(PVC) 함량을 1kg당 100mg 이하로 정한다. 고유점도와 수분 함량 등도 평가 항목이다. 이 수치는 재생원료의 품질기준이며, 음식이나 먹는 물에 허용되는 오염물질 수치를 뜻하지 않는다.

 

식품과 직접 닿는 용도로 사용할 때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2026년 3월 개정된 ‘기구 및 용기·포장의 기준 및 규격’은 PET 투입원료가 기후부 기준에 적합하도록 하고, 재생공정의 설비·운영조건과 위생·품질관리 체계를 관리하도록 정한다.

 

또 대표적인 화학물질로 투입원료를 인위적으로 오염시킨 뒤 실제 재생공정에 따라 처리해 오염물질 제거 성능을 입증하도록 한다. 눈에 보이는 이물질을 줄이는 것과 재생공정의 오염물질 제거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각각 필요한 셈이다. 기후부 기준 역시 식약처의 인위적 오염물질 시험에 적합하더라도 인정된 공정을 거치지 않은 물질을 식품 접촉 부분에 쓰지 못하도록 한다.

 

공급량을 늘리는 정책은 이처럼 품질관리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수거 경로를 넓히더라도 공정과 기록 관리가 뒤따라야 원료의 사용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확인 절차를 하나의 ‘재활용 인증’처럼 묶어 설명하면 각 단계가 확인하는 범위를 놓치기 쉽다.

 

■ 순환의 마지막 단계는 제조사의 실제 투입

 

원료가 생산된 뒤에는 이를 새 병에 사용하는 수요가 필요하다. 한국환경공단이 안내하는 2026년 재생원료 사용의무율은 10%다. 연간 5000톤 이상 PET병을 사용해 먹는샘물 또는 비알코올 음료류를 제조하는 사업자가 대상이며, 모든 플라스틱 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비율은 아니다.

 

사용률은 대상 품목·재질별 연간 국산 재생원료 사용량을 연간 내수용 출고량으로 나눠 산정한다. 회수된 병의 개수나 선별장에 들어온 폐기물 무게만으로 사용의무 이행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기후부는 2027년 이후 의무율을 구체화하는 개정안을 지난 9월 7일 행정예고하고 30일까지 의견을 받았다. 이후 적용 기준은 최종 고시 내용과 시행 시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사용의무는 재생원료 수요를 뒷받침하지만 그 자체로 모든 회수 물량의 구매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생산·구매 현장에서는 필요한 품질의 원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실제 투입하는 연결이 중요하다. 수거량, 품질기준을 충족한 원료 생산량, 제조사의 사용량을 나눠 살펴야 어느 단계에서 개선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페트병의 순환을 평가할 때는 분리배출 참여와 설계 개선에 더해 그 뒤의 품질 검증과 사용 실적을 함께 봐야 한다. 병을 다시 병으로 만드는 체계를 넓히는 일과 불필요한 포장 사용을 줄이는 일도 함께 추진할 과제다.

이용학 기자 yonghak@vega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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