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비건·채식 식품의 일부 육류 관련 명칭 사용을 제한하는 데 합의하면서 대체식품 표시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소비자 혼선을 줄이고 축산물 명칭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식물성 대체식품 시장의 혁신과 소비자 선택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유럽소비자기구는 3월 5일 유럽연합 기관들이 비건·채식 식품에 일부 육류 관련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에 따르면 ‘버거’와 ‘소시지’처럼 가공육에서 널리 쓰이는 일부 표현은 계속 사용할 수 있지만, ‘치킨’, ‘비프’, ‘베이컨’, ‘스테이크’, ‘간’ 등 동물명·부위명·육류 명칭 일부는 제한 대상에 포함됐다.
유로뉴스도 이번 합의가 ‘비프’, ‘포크’, ‘치킨’, ‘터키’, ‘덕’, ‘램’, ‘스테이크’, ‘립’, ‘윙’, ‘브레스트’, ‘베이컨’ 등 다수 표현을 식물성 제품 표시에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르몽드는 EU 회원국과 유럽의회 협상단이 관련 명칭 제한에 합의했으며, ‘버거’와 ‘소시지’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이번 논의는 식물성 대체식품이 기존 육류 제품과 유사한 형태로 판매되는 과정에서 표시 기준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쟁점이다. 축산업계와 일부 정치권은 전통적인 육류 명칭을 식물성 제품이 사용하는 것이 소비자 혼선을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소비자단체와 식물성 식품업계는 ‘비건’, ‘식물성’ 등 표시가 명확하다면 소비자가 제품 성격을 구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국 채식협회는 이번 조치가 동물명과 부위명 등 여러 식품명 사용을 제한하지만, ‘버거’, ‘소시지’, ‘너겟’ 등은 제품이 명확히 식물성 또는 비건으로 표시되는 경우 계속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익숙한 식품 명칭이 소비자가 식물성 제품의 용도와 조리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내 식물성 식품 명칭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EU는 이미 식물성 음료에 ‘우유’, ‘치즈’, ‘요거트’ 등 유제품 명칭 사용을 제한해 왔다. 2020년에는 식물성 대체육의 ‘버거’ 명칭 제한이 논의됐다가 부결됐고, 지난해 유럽의회가 식물성 식품의 육류식 명칭 제한을 다시 추진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번 합의가 곧바로 모든 회원국에서 최종 시행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관련 조치는 유럽의회와 EU 이사회 등 후속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만 절차상 큰 변수가 없으면 식물성 대체식품 표시 기준은 기존보다 엄격해질 가능성이 있다.
표시 규제는 소비자 보호와 산업 경쟁의 경계에 놓여 있다. 소비자가 동물성 제품과 식물성 제품을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한 표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익숙한 식품명을 전면 제한할 경우 식물성 제품의 용도와 조리법을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대체식품 시장에서는 제품명보다 원료, 알레르기 정보, 영양성분, 비건 표시의 명확성이 소비자 판단에 더 직접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EU의 명칭 제한 논란은 국내 대체식품 시장에도 시사점을 준다. 식물성 대체육과 대체유제품이 늘어날수록 제품명, 원료 표시, 인증 여부, 영양 정보가 소비자 선택의 핵심 요소가 된다. 대체식품 표시 기준은 축산물 명칭 보호와 소비자 알권리, 식물성 식품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정교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