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모임, 허스트 전시 규탄 기자회견

국립현대미술관 앞 침묵 행진…동물 죽음 전시 문제 제기

 

데이미언 허스트에게 살해당한 동물들을 생각하는 모임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를 규탄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발언과 성명서 낭독에 이어 침묵 행진, 헌화, 자유발언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흰 상의를 입고 국화 그림이 새겨진 피켓을 든 채 미술관 주변을 말없이 걸었으며, 정문 앞에서 묵념한 뒤 피켓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희생된 동물을 추모했다. 행사 중에는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과 행인들에게 성명문 QR코드가 담긴 엽서도 배포됐다.

 

모임은 성명서 ‘학살과 양립 가능한 예술은 없다’를 발표하고 영국 시각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작업 방식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기획을 문제 삼았다. 성명서에는 허스트의 작업에 상어, 양, 소, 송아지, 돼지, 물고기, 새, 파리, 나비 등 동물이 동원돼 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모임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의 죽음을 전시하는 작가, 제도로 그 폭력을 승인하는 미술관의 행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성명서에는 허스트 작업에 동원된 동물 수가 최소 90만 개체로 추산된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또 2012년 테이트 모던 재전시 당시 23주 동안 9000마리의 나비가 죽었고, 파리를 전기살충기에 타 죽게 한 작품 ‘백 년’은 독일에서 동물보호법 위반 소지로 전시 도중 철거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모임은 동물 사체를 죽음의 상징이나 미적 장치로 사용하는 방식이 개별 생명의 맥락을 지우고 인간 중심적 감상만 남긴다고 비판했다. 포름알데히드와 유리 진열장이 죽음을 정돈된 전시물로 바꾸며, 동물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죽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린다는 입장이다.

 

비판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도 이어졌다. 성명서는 미술관이 허스트 개인전을 공적 권위와 예산을 통해 대규모로 소개하면서 윤리적 논쟁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디오가이드 등 전시 해설이 동물의 사체와 죽음을 철학적 개념의 매개물로 설명한 점을 문제로 들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박지한 살처분폐지연대 활동가가 사회를 맡았고, 조한결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과 김도희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소속 발언자가 발언했다. 김소민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활동가와 언저리 살처분폐지연대 활동가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김도희 발언자는 “죽음을 말하기 위해 꼭 누군가를 죽여야 하나요. 생의 유한함을 보이기 위해 다른 생명의 몸을 갈라야만 합니까”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전시실에 놓인 동물 사체와 동물의 죽음을 소비하는 관람 문화를 비판했다. 이들은 공공미술관이 동물의 죽음을 비판적 맥락 없이 문화자본으로 전환해서는 안 된다며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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