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원료가 폐기물 감축 수단을 넘어 산업 원료와 공급망 관리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무색페트병 재생원료 10% 사용 의무화와 2030년 30% 확대, 한국형 에코디자인 도입, 미래 폐자원 순환이용 체계 강화를 제시했다.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 설계, 원료 추적, 함유율 확인, 조달까지 연결하는 산업정책 성격이 커지는 흐름이다.
우선 적용 대상은 무색페트병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무색페트병을 연간 5000톤 이상 사용하는 먹는샘물·비알코올 음료류 제조업체를 재생원료 사용의무 제도 적용 대상으로 지정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재생원료 10% 사용 의무가 적용됐고, 2030년까지 의무 대상은 연간 1000톤 이상 사용업체로 넓어진다. 의무율도 30%까지 높아진다.
이 변화의 핵심은 재생원료가 실제 제품 원료로 다시 들어가는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사용된 페트병이 다시 페트병 원료가 되려면 단순 수거만으로는 부족하다. 선별과 세척, 재활용 공정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하고, 식품용기로 다시 쓰일 경우 안전성 확인도 필요하다. 환경 당국은 재활용 공정의 적정성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용기 안전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한다.
공공부문도 수요 창출 역할을 맡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서울아리수본부, 부산 순수365, 인천하늘수, 한국수자원공사 등 병입수돗물 페트병을 생산하는 수도사업자와 재생원료 사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공공부문 수도사업자는 올해 병입수돗물 페트병 제조 때 민간 의무율 수준인 10%에서 최대 100%까지 재생원료 사용을 추진한다. 재생원료 시장이 안정되려면 제도상 의무와 실제 구매 수요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재생원료 정책은 플라스틱에만 머물지 않는다. 올해 업무계획에는 태양광 폐패널, 사용후 배터리, 통신장비 속 희토류 등 미래 폐자원의 회수·재활용 실증과 재생원료 생산 확인 체계가 포함됐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날수록 사용후 제품에서 금속과 소재를 회수하는 역량은 기업의 원가 구조와 수출 대응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제도 정비가 더 구체화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8일 폐배터리 재활용 체계 개선 설명회 자료에서 2027년 5월부터 배터리 재생원료 인증제가 시행된다고 밝혔다. 인증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재생원료 생산 인증과 산업통상부의 배터리 내 재생원료 사용 인증으로 나뉜다. 올해 6월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인증 방법론을 보완하고 12월까지 운영 지침을 확정하는 일정도 제시됐다.
산업계가 마주한 과제는 원료 확보와 품질 신뢰다. 배터리 재활용에서는 폐배터리와 제조공정 스크랩 등을 파쇄·분쇄해 만든 블랙매스가 핵심 원료로 거론된다. 정부는 폐배터리뿐 아니라 제조 공정 부산물과 불량품까지 생산인증 대상에 포함하고,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대외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방향을 내놨다. 재생원료가 실제 산업 원료로 인정받으려면 함유율, 불순물, 공급망 추적성이 함께 관리돼야 한다.
재생원료인증제 시범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순환경제정보플랫폼에 공고된 2026년도 시범사업은 재생원료가 포함된 소재·부품의 공급망 전 과정에서 재생원료 사용 여부와 함유율을 확인하는 제도다. 지원 대상은 모든 산업을 원칙으로 하되, 알루미늄, 철강재, 타이어, 사용후 배터리 등이 우선 지원 산업군으로 제시됐다. 재생원료 관리가 포장재를 넘어 금속·부품·소재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기업에는 기회와 부담이 동시에 생긴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가 강화되면 재활용 기업과 소재 기업에는 새로운 수요가 생긴다. 반면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원료 품질, 공급 안정성, 가격 변동, 함유율 관리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 특히 수출기업은 해외 바이어와 주요 시장의 재생원료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제도와 국제 기준의 정합성도 살펴야 한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표시와 검증 가능성이 중요해진다. 재생원료 사용 제품이 늘어나더라도 어떤 원료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실제 재활용 원료인지, 식품 접촉 제품에서는 안전성이 어떻게 확인됐는지 알기 어렵다면 친환경 표시는 신뢰로 이어지기 어렵다. 재생원료 정책이 그린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기업의 선언보다 추적 가능한 공급망과 공신력 있는 함유율 확인, 제품 단위 정보 제공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재생원료 확대는 폐기물을 줄이는 환경정책이면서 소재 공급망을 다시 짜는 산업정책이다. 무색페트병에서 시작된 의무 사용 제도와 배터리·금속·타이어 등으로 넓어지는 함유율 관리 체계는 국내 녹색산업의 기반을 시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남은 쟁점은 재생원료가 일회성 친환경 문구가 아니라 품질과 가격, 추적성, 수요가 맞물린 산업 원료로 정착할 수 있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