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국과 중계기, 서버 등 폐통신장비가 그린산업의 새 자원순환 과제로 떠올랐다. AI 서비스와 통신망 고도화로 디지털 인프라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장비 교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자원 안에 구리·네오디뮴·팔라듐·코발트·탄탈럼 등 핵심광물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환경공단과 폐통신장비 핵심광물 국내 순환 촉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폐통신장비의 발생·처리 현황과 재활용제품 유통 흐름을 조사하고, 국내 순환이용 체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뒀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디지털 기후대응 연구: 디지털인프라 자원순환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에서 배출된 기지국·중계기·서버 등 폐통신장비는 1만3600톤 규모다. 이 장비에 포함된 핵심광물 가치는 약 18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폐통신장비가 생활 폐가전보다 핵심광물 함량이 높아 자원 가치가 크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폐통신장비는 재활용업체를 거쳐 해체·선별된 뒤 재질별로 처리되는 구조에 머물렀다. 일부 핵심광물 함유 폐자원은 국제 시세와 수요에 따라 국내외 시장에서 거래돼 최종 유통경로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핵심광물이 국내 산업 원료로 다시 쓰이려면 장비 발생부터 해체, 선별, 유통, 재투입까지 이어지는 관리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협약에 따라 참여 기관은 폐통신장비 발생·처리 데이터 공유, 분류 기준 마련, 처리·유통 조사 기준 정비, 공동사업 추진 등을 진행한다. 과기정통부는 폐장비 안의 핵심광물 분리 자동화 기술개발과 실증을 지원하고, 기후부는 폐통신장비 해체·선별시설 설치 지원 방안을 맡는다. 양 부처는 폐통신장비 순환이용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방침이다.
폐통신장비 순환이용은 단순한 폐기물 처리 문제를 넘어 핵심광물 공급망 관리와 맞닿아 있다. 전기차, 배터리, 재생에너지 설비, 반도체, 통신장비 등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산업은 특정 광물 의존도가 높다. 유럽연합은 핵심원자재법을 통해 2030년까지 전략 원자재 공급망에서 역내 채굴, 가공, 재활용 역량을 높이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순환이용 체계가 정착하려면 경제성과 추적 가능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회수한 광물이 다시 산업 원료로 쓰이려면 장비별 광물 함량, 해체 비용, 선별 기술, 재활용 원료 품질, 거래 경로가 함께 정리돼야 한다. 통신사업자와 재활용업계가 참여하는 이유도 장비 발생 단계와 처리 단계가 분리돼 있던 기존 구조를 좁히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AI 인프라와 통신망이 확대될수록 폐통신장비는 계속 발생한다. 이번 협약이 일회성 재활용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으려면 핵심광물 회수량, 국내 재투입 규모, 탄소저감 효과 등 사후 지표가 뒤따라야 한다. 폐통신장비 순환이용은 그린산업이 친환경 이미지보다 공급망과 자원 효율을 다루는 단계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