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은 오는 31일까지 ‘제품 수리 촉진 지침’을 자국법으로 옮기고 적용해야 한다. 소비자가 고장 난 제품을 교체하기보다 수리해 오래 쓸 수 있도록 제조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다. 다만 모든 소비재를 포괄하지는 않으며, EU 법에 수리 가능성 기준이 마련된 제품부터 적용된다.
지침은 2024년 6월 채택돼 같은 해 7월 발효됐다. 대상 제품 제조사는 소비자의 요청을 받으면 합리적인 기간과 가격으로 수리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예비부품도 수리를 단념하게 할 만큼 높은 가격에 공급해서는 안 된다.
대상에는 세탁기·세탁건조기·냉장고·식기세척기·TV·진공청소기·의류건조기·스마트폰·태블릿·무선전화기·서버·데이터 저장장치 등이 포함된다. 정당하고 객관적인 사유 없이 계약 조건이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로 수리를 막는 행위도 제한된다. EU 밖에서 생산된 제품은 역내 공식 대리인이나 수입업자 등이 수리 의무를 이행한다.
수리 의무는 제품별 예비부품 공급 기준이 유지되는 동안 적용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제품과 부품에 따라 대체로 5~10년이라고 설명했다. 31일 이전에 구매한 제품도 해당 기준이 남아 있다면 수리를 요구할 수 있다.
법적 보증기간 안에 교체 대신 수리를 택하면 보증기간은 1년 늘어난다. 이 조항은 31일 이후 구매한 제품에 적용되며, 연장 횟수는 한 차례다. 수리 조건을 비교하는 유럽 수리정보서는 사업자가 선택적으로 제공하고, 제공된 조건은 30일간 유지해야 한다. 수리업체 검색을 지원하는 EU 온라인 플랫폼은 2027년 운영될 예정이다.
제품 수명 연장은 전자폐기물 증가와도 맞물려 있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EU 시장에 공급된 전기·전자제품은 1인당 32.2㎏이었지만 공식 수거된 전자폐기물은 11.6㎏이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시장 공급량은 78%, 전자폐기물 수거량은 60% 증가했다.
한국의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제20조에도 예비부품 확보와 배송기한, 수리정보 제공 등에 관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제조·수입업자가 기준을 준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구조다. 한국환경연구원은 2025년 연구보고서에서 비싼 수리비와 부품·정보 접근성 부족, 소프트웨어 제한 등을 국내 수리권의 주요 장애 요인으로 꼽고 구체적인 이행 기준과 가이드라인 마련을 제안했다.
EU 지침은 폐기된 제품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단계에 앞서 제품의 사용 기간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국내에서도 예비부품의 공급 범위와 수리정보 공개 방식, 소프트웨어 제한, 수리 이후 책임 소재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