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도시 공원과 골프장, 묘지와 주택가 뒷마당에 널리 분포한 잔디밭이 겨울철에도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기존 도시 탄소 모델에서 간과돼온 이 생물학적 활동은 향후 온실가스 정책과 탄소 회계의 정밀도를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는 미국지구물리학연합(AGU)이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 저널 – 생지구과학 분야(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Biogeosciences)’에 최근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기상·대기과학 전공의 제이슨 혼 박사과정 연구원을 포함한 연구진이 주도했다. 이들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시를 대상으로 도시 내 잔디밭의 탄소 흐름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실험을 1년 동안 수행했다.
연구팀은 도시 중심의 골프장과 묘지에 각각 에디 공분산 플럭스 타워를 설치하고, 대기와 식생 사이의 이산화탄소 교환을 실시간 측정했다. 이는 ‘인디애나폴리스 플럭스 실험(Indianapolis Flux Experiment, INFLUX)’의 일환으로,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다 정확히 추정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다.
관측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기존 탄소 시뮬레이션 모델은 겨울철 잔디를 사실상 ‘비활성’ 상태로 간주해, 해당 기간 동안 이산화탄소의 순배출이 일어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에 따르면, 영하의 날씨에도 잔디는 낮 시간 동안 광합성을 지속하며 이산화탄소를 일정 부분 흡수하고 있었다. 혼 연구원은 “모델은 겨울철에도 잔디가 배출원으로만 작동한다고 봤지만, 현장에서는 미세하나마 광합성 반응이 계속 이뤄지고 있었다”며 “이러한 차이는 배출량 추정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고 설명했다.
도시 탄소 모델에서 식생은 탄소의 양방향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동시에, 호흡이나 부패 과정에서 이를 다시 방출한다. 문제는 이러한 생물학적 작용이 시간·계절에 따라 급변한다는 점이다. 기존 모델이 계절별로 식생 활동을 단순화하면, 인간 유래 배출량의 정확한 분리와 추정이 어렵다. 연구진은 “정책 수립과 감축 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도시 내 식생의 실제 활동을 반영한 모델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번 실험에서는 잔디의 관리 상태 또한 중요한 변수로 확인됐다. 관개와 비료 처리가 집중된 골프장 잔디는 상대적으로 생물학적 활성이 높았으며, 덜 관리된 묘지 잔디는 활동성이 낮았다. 이에 따라 동일한 잔디밭이라 해도 관리 방식에 따라 이산화탄소의 흡수·배출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향후 도시 조경 및 녹지 관리 정책 수립 시 고려돼야 할 요소로 지목된다.
연구진은 측정 결과를 기존 온실가스 시뮬레이션에 반영해 새로운 ‘터프그래스’ 식생 항목을 도입했다. 그 결과, 모델은 겨울철에도 낮 시간 광합성에 의한 이산화탄소 흡수를 반영할 수 있게 됐으며, 도시 전체의 배출량 추정치가 실제 관측치와 더욱 일치하게 됐다. 혼 연구원은 “겨울철의 조용한 생물 활동조차 모델의 신뢰도 향상에 기여한다”며 “잔디와 같은 녹지가 도시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정책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도시 면적의 약 30%가 잔디밭으로 덮여 있다. 다른 북미 도시들 역시 비슷한 수준의 잔디 면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도시 탄소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발견이 도시 기후 정책의 정교화에 새로운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처럼 단순히 화석연료 배출만 추적하는 방식으로는 도시 내 전체 탄소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도시의 탄소중립 전략 수립 과정에서 잔디밭과 같은 저평가된 식생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생물학적 활동이 미약하다고 간주돼온 겨울철에도 광합성을 멈추지 않는 잔디 한 포기가 도시의 ‘탄소 흡수기’ 역할을 조용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 정책이 보다 정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돼야 하는 시대,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생물학적 활동이 미래 기후 모델의 정확성을 좌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