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젖소 농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리가 실제로는 인수공통감염병과 슈퍼박테리아를 퍼뜨리는 ‘숨은 전파자’일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나왔다. 프랑스 연구진이 최근 국제학술지 npj Biofilms and Microbiomes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변섭식성 집파리류인 뿔근파리(Neomyia cornicina)가 소분뇨로부터 병원성 세균과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섭취하고 이를 농장 내외로 확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프랑스 생제네샹파넬 지역의 한 젖소 농장에서 갓 배설된 소분뇨 위에서 활동 중인 파리 29마리를 채집해 위장관을 해부하고 DNA 분석을 실시했다. 동시에 같은 농장에서 확보한 48개의 소분뇨 시료와의 비교 분석도 병행했다. 총유전체 메타유전체(shotgun metagenomic) 방식으로 유전체를 정밀 분석한 결과, 파리와 분뇨 사이에 유전적으로 유사한 병원균과 내성 유전자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대장균(E. coli), 시겔라(Shigella), 큐열(Q fever)의 원인균인 코크시엘라 버네티(Coxiella burnetii) 등의 병원균이 파리와 분뇨 양쪽 모두에서 검출됐다. 일부 병원균은 오히려 파리 위장관 내에서 더 높은 농도로 발견돼, 파리가 단순한 매개체를 넘어 병원균 증식의 환경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파리에서 검출된 유전자는 병원균의 부착·침입을 돕는 분비계 유전자, shiga 독소 유전자 등으로, 사람에게 중증 감염을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요소들이다.
항생제 내성 유전자(ARG) 분석 결과도 우려스럽다. 파리와 분뇨 양쪽에서 총 86개의 내성 유전자가 확인됐으며, 이 중 18개는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특히 파리에서는 베타락탐(blaOXA), 아미노글리코사이드, 테트라사이클린 계열 항생제에 대한 내성 유전자가 더 높게 검출됐다. 연구진은 해당 농장에서 실제로 이러한 항생제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고 밝혔으나, 사용량과 내성 유전자 출현 간의 직접적인 통계적 상관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환경 내 내성 유전자의 확산이 단순한 항생제 사용 여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특히 파리 위장관에서 발견된 미토콘드리아 COI 유전자를 분석함으로써, 개별 파리가 어느 분뇨에서 병원체를 섭취했는지를 유전적으로 추적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를 통해 파리와 특정 분뇨 집단 간 병원체 이동 경로가 명확히 입증됐다. 연구진은 총 8종의 병원체 유전체를 파리와 분뇨에서 동시에 확인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사람에게 집단 감염을 유발할 수 있는 고위험 병원균으로 분류된다.
해당 연구는 농장 내 곤충 방제가 단순한 위생 관리 수준을 넘어 인수공통감염병 및 슈퍼박테리아 확산을 막는 핵심 수단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이동성이 높은 파리가 병원체를 원농장을 넘어 외부로까지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방역의 단위는 농장 내부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 파리 한 마리에서 큐열균이 검출됐다면, 그 파리가 지나간 길은 모두 감염 경로로 간주해야 한다.
이에 따라 단일 농장 차원을 넘어선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방역 전략이 요구된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로 다수 농장을 대상으로 한 장기 추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파리와 같은 곤충 매개체를 통제하기 위한 생태적 방제 기술, 예컨대 포식성 곤충 활용, 유인포획 시스템, 무독성 기피제 등의 적극적인 도입도 검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농장 현장에서는 정기적인 분변 관리, 사료·물 관리, 구충 활동 강화 등 일상적 위생 조치의 철저한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
지금까지 농장 내 파리는 종종 ‘불결함’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연구는 그것이 단순한 불쾌지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공중보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파리 한 마리가 옮기는 병원균과 내성 유전자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과학이 보여준 이 경고를 방치하지 않고 실질적인 예방조치로 연결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