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비건 대체육에 ‘버거·소시지’ 명칭 사용 금지 추진…소비자 혼동 근거는 부족

  • 등록 2025.09.12 14: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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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유럽연합(EU) 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식물성 대체육 제품의 명칭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유럽의회 농업위원회가 최근 표결을 통해 비건 식품과 아직 시판되지 않은 배양육에 ‘버거’, ‘소시지’와 같은 육류 관련 용어 사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EU 차원의 전면 금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소비자 보호 차원을 넘어, 농업 이해관계와 식품 산업의 미래 전략이 충돌하는 대표적 사례로 주목된다.

 

농업위원회는 9월 8일 표결에서 49명 중 33명이 찬성표를 던지며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대는 10명, 기권은 5명이었다. 표결 결과에 따라 법안은 전체 의원이 참여하는 본회의로 회부되며, 통과될 경우 집행위원회·이사회·의회 간 3자 협상(트릴로그)으로 이어진다. 이번 제안은 프랑스 의원 셀린 이마르가 공동시장기구(CMO) 규정 검토 과정에서 발의했으며, 집행위원회가 뒤이어 29개의 금지 용어를 지정하는 유사 제안을 내놓으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다만 집행위의 안보다 의회 측 제안이 훨씬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소비자가 ‘식물성 버거’나 ‘비건 소시지’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실제로 혼동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자료는 부족하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지난해, 회원국이 독자적으로 이러한 용어 금지를 시행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소비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행 법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밝힌 바 있다.

 

더 나아가 2020년 유럽소비자기구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비건 대체육에 기존 육류 용어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2023년 진행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만이 이를 혼동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새로운 용어를 강제로 만들 경우 소비자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위원회는 육류 명칭을 오직 동물성 고기에만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마르 의원의 수정안은 ‘스테이크’, ‘소시지’, ‘버거’와 같은 명칭을 동물의 식용 부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으며, 배양육 역시 제외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는 사실상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다. 유럽채식연맹의 라파엘 핀토 정책 매니저는 “소비자 혼란이라는 근거 없는 명분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짙다”며 “오히려 완두콩, 콩 등 원재료를 생산하는 농가와 혁신 기업,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권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비판했다.

 

이번 논의는 단순히 농업위원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수시장·소비자보호위원회, 환경·식품안전위원회, 공중보건위원회, 산업·연구·에너지위원회 등 다른 주요 상임위에서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 유럽의회의 보수적 기류 속에서 본회의 표결이 금지안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축산업계의 강력한 로비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수 회원국이 이미 식물성 대체육 명칭 사용 제한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번 농업위원회의 결정이 그 흐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이 EU가 내세운 지속가능 식량 정책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EU는 단백질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식물성 산업을 육성해 기후 위기 대응과 식량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해 왔다. 최근 덴마크가 의장국으로서 주도하는 ‘EU 식물성 식품 공동 행동계획’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또한 유럽과학아카데미자문위원회는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후와 건강, 식량 안보 차원에서 대체육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농업위원회의 결정은 이러한 목표와 상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본회의 표결이 향후 판도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만약 금지안이 통과된다면 EU 차원에서 전례 없는 대체육 명칭 규제가 현실화되고, 이는 산업 전반에 걸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부결될 경우에는 2020년에 이어 또다시 규제 논의가 좌절되며, 소비자와 산업계 모두에게 한숨 돌릴 여지가 생길 것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식품 라벨링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이 식품 전환 시대에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김민영 기자 min@vega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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