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전 세계 성인의 약 17.5%가 불임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라운 통계가 아니다. 환경 오염, 생활 습관 변화, 식습관 불균형 등이 맞물리면서 생식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채소와 과일, 향신료 등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성분이 몸속 염증을 줄이고 세포 손상을 막아 정자와 난자의 질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뉴트리션(Frontiers in Nutrition)’에 최근 게재된 논문은 식물성 성분이 생식 건강을 보호한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했다. 연구진은 폴리페놀, 카로티노이드, 커큐민과 같은 물질이 항산화·항염 효과를 발휘해 생식 기능 저하와 불임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성분은 체내에서 과도하게 쌓이면 세포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를 줄이고, 항산화 효소의 활동을 촉진해 세포를 보호한다. 동시에 몸속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신호는 줄여 면역 체계의 균형을 돕는다. 쉽게 말해, 세포의 방어력을 강화하는 한편, 불필요한 염증은 차단해 생식 건강이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임상 연구 결과도 눈길을 끈다. 토마토에 풍부한 라이코펜을 하루 4~8mg 섭취한 남성은 정자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DNA 손상이 줄어드는 효과가 관찰됐다. 여성의 경우 레스베라트롤을 하루 150mg 섭취했을 때 난소 기능을 나타내는 지표가 개선됐다. 또한 강황에 들어 있는 커큐민은 자궁내막증 환자의 염증 수치를 낮추고, 체외수정 같은 보조생식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한계 역시 뚜렷하다. 대부분의 식물성 성분은 체내 흡수율이 10% 미만으로 낮아 섭취량 대비 효과가 제한적이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노캡슐 기술을 활용하거나, 인지질과 결합해 흡수율을 높이는 방법, 혹은 후추 성분인 피페린처럼 흡수를 돕는 물질을 함께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런 기술을 적용했을 때 흡수율이 5~30배 높아졌다는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향후 과제로는 보다 정밀한 연구가 꼽힌다. 세포 단위의 분석이나 다양한 생체 정보(오믹스 데이터)를 함께 활용해 식물성 성분이 인체 조직별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장기간 섭취했을 때 안전성, 다른 영양소와의 상호작용, 혹은 고용량 섭취 시 오히려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킬 수 있는 역효과(프로옥시던트 효과) 여부도 검증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이번 논문은 불임 인구 증가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식물성 성분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초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진은 “식물에서 얻은 성분은 일상적으로 섭취하기 쉽고 접근성도 높다”며 “영양보충제와 기능성 식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