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기후 위기의 그늘이 지구의 허파인 숲을 짓누르고 있다. 인류가 배출한 탄소를 흡수하며 기후 균형을 유지해온 숲이, 이제는 스스로 붕괴 위기에 놓였다. 전 세계적으로 나무의 사망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파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나왔다.
핀란드 헬싱키대학교의 사무리 윤틸라(Samuli Junttila) 부교수를 비롯한 100여 명의 연구진은 89개국에서 수행된 약 50만 건의 산림 모니터링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인간 활동에 따른 기후 변화가 전 세계 산림 붕괴의 주요 원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뉴 파이톨로지스트(New Phytologist)’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기후 변화로 인한 평균 기온 상승, 장기 가뭄, 대형 산불, 폭풍, 해충 피해, 질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무의 고사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틸라 부교수는 “현재로서는 전 세계 나무의 10%가 죽을지, 50%가 죽을지조차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기후 변화가 숲의 생존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연구팀은 산림이 지닌 ‘탄소 흡수 능력’의 불안정성이 인류의 기후 대응 정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전 세계 숲은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약 20%를 흡수하며 탄소 순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의 대가뭄 사례, 예컨대 2010년 아마존의 가뭄처럼, 한 번의 기후 충격만으로도 광범위한 숲이 탄소 저장원에서 오히려 배출원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핀란드 정부는 숲을 기후 정책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숲이 계속해서 탄소를 흡수하려면 나무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지역별 생태 특성과 종 구성을 반영한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윤틸라 연구진은 ‘글로벌 생태계 건강 관측소(Global Ecosystem Health Observatory)’를 설립해 위성영상과 항공 촬영, 인공지능 기반 분석 기술을 결합한 장기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다.
윤틸라 부교수는 “나무 한 그루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의 관측이 필요하다”며 “현대 기술을 통해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된 분석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지역별 데이터 격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러시아 일부 지역은 산림 모니터링 체계가 극히 취약하다. 측정 구역은 존재하지만 정기적인 재측정이 이뤄지지 않거나, 표준화된 조사 방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국가 간 장기적 협력과 공통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역적 고사 현상을 전 지구적 기후 변화 요인과 연계해 분석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또한 연구는 기술적 불균형의 문제도 지적했다. 위성 관측이나 라이다(LiDAR) 등 원격탐사 기술이 숲의 상층부 변화를 감지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지면에 가까운 하층부의 나무 사망은 포착하지 못한다. 드론(UAV)이나 초고해상도 영상 기술은 이를 보완할 수 있으나, 고비용과 장비 접근성의 문제로 국가 간 활용 격차가 크다.
윤틸라 부교수 연구팀은 특히 ‘과학의 공정성’도 강조했다. 그는 “열대림과 같은 지역의 과학자들은 연구 데이터의 생산에 크게 기여하지만, 종종 연구의 주도권에서는 배제된다”며 “기후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부족한 지역의 연구자들이 직접 분석을 주도하고 정책 설계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숲의 고사가 단순히 자연 생태계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탄소 순환과 기후 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확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지구의 산림이 얼마나 빠르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정밀하게 이해하는 것은 곧 인류가 기후 위기 시대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라고 강조했다.
결국 숲의 건강은 인류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기술과 자본의 한계를 넘어선 국제적 협력,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참여 없이는 숲의 회복력 또한 보장될 수 없다. 지금 숲이 보내는 경고음은 단지 나무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징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