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뉴스=김민영 기자]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의 한 수족관에서 상어와 가오리가 먹이와 무관한 물체와 반복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행동이 관찰되면서, 연골어류의 인지 능력과 정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들이 단순한 반사 행동이 아니라 즐거움 자체를 목적으로 한 행동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상어가 감정 표현이나 복잡한 행동을 거의 보이지 않는 동물이라는 기존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관찰 대상 개체들은 장난감을 향해 돌진하거나 밀고, 물고, 물체를 옮기는 등 자발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연구가 진행된 대형 수조에서는 어린 레오파드상어가 플라스틱 오징어 모형을 향해 헤엄치다 마지막 순간 방향을 틀었고, 캘리포니아산 가오리는 주황색 고리를 입으로 굴리는 행동을 보였다. 혼상어는 노란색 링을 통과하는 행동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 같은 행동은 먹이 탐색이나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연구진은 사냥이나 스트레스 징후가 관찰되지 않았으며, 움직임이 비교적 느긋하고 반복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연구팀은 해당 행동을 ‘놀이’로 해석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블라디미르 디네츠 테네시대학교 녹스빌 캠퍼스 소속 연구자는 “상어와 가오리가 놀이 행동을 한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이를 명확히 기록한 사례”라며 “상어는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인지 능력을 지닌 동물”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바이올라대학교 생물학자 오텀 스미스는 사육 중인 상어와 가오리들이 장시간 수조 바닥에 정지해 있는 모습을 문제로 인식했다. 스미스는 이러한 상태가 환경 자극 부족과 연관될 수 있다고 보고, 환경 풍부화 실험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카브리요 해양 수족관의 협조를 받아 수영용 고리, 다이빙 공, 부드러운 플라스틱 장난감 등을 수조에 투입했다. 수조에는 세 종의 상어 12마리와 캘리포니아산 가오리 1마리가 있었다.
초기에는 장난감을 피하던 개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물체를 건드리거나 가볍게 무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상어는 장난감을 향해 직선으로 접근한 뒤 방향을 트는 등 야생에서 관찰되는 탐색 행동과 유사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색상에 따른 반응 차이도 확인됐다. 주황색과 노란색 장난감이 파란색이나 초록색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연구진은 상어의 색각 특성상 대비가 큰 색상이 더 쉽게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레오파드상어는 시간당 최대 120회까지 장난감과 상호작용했다.
이번 연구는 상어와 가오리를 식량 자원으로만 인식해 온 기존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장난감과 자발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개체별 선호와 반복 행동을 보인다는 점은 이들이 고도의 인지 능력과 정서적 반응을 지닌 존재임을 시사한다. 동물복지 분야에서는 지능과 감정 반응이 확인된 동물을 대상으로 한 포획과 소비에 대해 윤리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행동적 증거가 축적될수록 상어와 가오리를 단순한 수산물로 소비하는 문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육 환경 개선을 넘어, 인간과 해양동물의 관계 전반을 재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피사대학교의 동물행동학자는 놀이와 탐색 행동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의 동물복지 연구자는 놀이와 호기심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두 경우 모두 높은 인지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현재 공학 연구진과 협력해 어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장난감 설계를 진행 중이다. 향후 이러한 시도가 수족관 내 해양동물 복지 기준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연구 저널 ‘응용 동물 행동 과학(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