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뉴스=김민영 기자] 미국 전역의 토양에서 유기탄소 분해 속도가 최대 1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토양이 대기와 식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차이는 향후 기후변화 예측 모델의 정확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토양 탄소는 지구 기후 시스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토양에 저장된 탄소가 얼마나 빠르게 분해돼 이산화탄소로 방출되는지는 기후변화 예측 모델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토양 유형이나 생태계가 비슷하면 탄소 분해 속도도 유사하다는 가정이 널리 사용돼 왔다.
최근 아이오와주립대학교 연구진이 수행한 연구는 이러한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실험실 조건에서도 미국 전역에서 채취한 토양 시료의 유기탄소 분해 기본 속도는 최대 10배까지 차이를 보였다. 이는 토양 내 광물 성분과 미생물 특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를 이끈 생태·진화·유기체 생물학 부교수 차오쿤 루는 “그동안 환경 변화가 없을 경우 유사한 토양이나 생물군계에서는 탄소가 같은 속도로 분해된다고 단순화해 왔다”며 “그러나 이번 연구는 같은 토양 유형 안에서도 분해 속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One Earth에 최근 게재됐다. 지구 시스템 모델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토양 탄소 분해 추정치에 큰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연구진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국가 생태 관측 네트워크(NEON)가 관리하는 미국 내 20개 지역에서 토양 시료를 수집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시료를 배양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토양의 주요 물리·화학적 특성을 측정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각 토양의 분해 속도와 탄소 이용 효율성을 추정하는 토양 탄소 모델을 구축했다. 탄소 이용 효율성은 분해된 탄소 중 미생물이 흡수해 생체량으로 전환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머신러닝 기반 분석 결과, 토양 유형과 pH, 질소 함량처럼 이미 알려진 요인 외에도 곰팡이의 양과 특정 형태의 철·알루미늄 함량이 분해 속도 차이에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토양 광물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까지 지속될 수 있는 광물 결합 유기탄소의 안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총 156개 토양 시료의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미국 본토 전역에 적용해 약 4킬로미터 격자 단위의 토양 탄소 분해 속도와 탄소 이용 효율성 지도를 작성했다. 지도에는 지역별로 토양 탄소 역학이 크게 다른 양상이 드러났다.
연구 결과는 토양 탄소 모델이나 지구 시스템 모델을 활용해 탄소-기후 피드백을 예측하는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루 교수는 “지화학적·미생물 지표들이 큰 변동성을 유발하지만, 그동안 모델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토양 탄소의 구성 요소별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광물과 결합된 유기탄소는 수백 년간 지속되는 반면, 식물 잔해에서 유래한 입자성 탄소는 수년 내 분해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가 보전 정책이나 탄소 시장 제도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는 토양 유기탄소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분해돼 대기 중 이산화탄소로 방출되는 비율이 높은 반면, 북서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분해 속도가 느리고 더 많은 탄소가 미생물 생체량으로 토양에 남는 경향이 나타났다. 중서부 지역은 그 중간 수준으로 분석됐다.
루 교수는 “탄소가 토양에 더 오래 남는 지역에서는 동일한 양의 탄소 격리가 다른 지역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며 “토양의 탄소 유지 지속성을 고려한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