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뉴스=김태연 기자] 오늘날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매체의 출현 등으로 장수 TV 프로그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KBS 2TV에서 방송된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이하 ‘사랑과 전쟁’)은 시즌 1(1999년 10월 22일~2009년 4월 17일)과 시즌 2(2011년 11월 11일~2014년 8월 1일)를 합쳐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안방극장을 지키며 큰 인기를 얻었다. 본지에서는 『2025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십 ‘선한 영향력’ 12인 선정』의 다섯 번째 주자로 사랑과 전쟁 1, 2를 모두 연출하며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기록을 놓치지 않고 수많은 시청자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 이승면 PD를 인터뷰했다.

Q. 메인 PD로서 사랑과 전쟁의 사회적 순기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이승면 PD : 방송은 항상 사회현상보다 한 발짝 먼저 선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례로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을 가장 많이 보는 시청자층은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죠. 사랑과 전쟁도 의외로 미혼 여성이 가장 많이 봤습니다. 사랑과 전쟁의 주 내용이 자신이 결혼하면 겪을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부간의 갈등,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의 고부 갈등 같은 가족 문제들을 현실성 있게 공론화함으로써 오늘날 여성의 권리가 조금 더 보장받는 사회로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방송이 그렇듯 역기능도 존재합니다. 이 드라마로 인해 우리나라 가정의 이혼율이 증가하고,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는 데 제한적이나마 영향을 줬다는 생각도 듭니다.
Q. 사랑과 전쟁을 연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승면 PD : 드라마의 극적 구성을 위해서는 남자주인공에게 비난의 여지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주 시청자가 여성층이었으니까요. 물론 사랑과 전쟁 2로 가면서는 여성의 외도, 부도덕함 등도 다뤘습니다. 그때는 남자 등장인물을 여성보다 훨씬 착하고 순하게 그렸습니다. 그 이유는 명료합니다. 사랑과 전쟁은 단막극이다 보니 부부간의 잘잘못이 선명하게 부각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를 다루기에는 방영 시간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은 잘잘못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남편이 잘못한 경우는 아내를 착하게, 아내가 잘못한 경우는 남편을 착하게 그림으로써 몇몇 특별한 이야기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스토리에서는 선과 악의 개념이 선명하게 대립되는 방향으로 드라마가 연출되었습니다.
Q. 왜 사랑과 전쟁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이승면 PD : 사랑과 전쟁은 다름 아닌 ‘가정’을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부모님이 있고, 가정에서 교육받으며 커나갑니다. 즉, 우리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사회 공동체 단위가 가정인데, 이러한 가정을 이야기의 가장 비중 있는 중심 소재로 다룬 게 이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방영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정 내 갈등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랑과 전쟁에서 소개된 수많은 이야기는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감대와 흡인력을 시청자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랑과 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되면서 오늘날에도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Q. PD님이 현재 맡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이승면 PD : 저는 현재 KBS 1TV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10분에 방영 중인 ‘TV비평 시청자데스크’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KBS 프로그램에 관한 다양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입니다. 즉,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참여와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방송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시청자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제작자와 시청자 간 가교 역할을 위해 제도적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청자와 방송사 간의 소통은 특히, 시청자가 주인인 공영방송 KBS의 책임과 역할에 기본이 되는 핵심 과정입니다. 어찌 보면 공영방송의 존재 의의라고도 할 수 있겠죠. 결국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방송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Q. PD님이 생각하시는 PD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승면 PD : 저는 과거 뉴욕 필름 아카데미에서 연출 및 프로듀서 과정을 수료한 바 있습니다. 이때 저는 LA에 있는 뉴욕 필름 아카데미에서 미국 및 전 세계 유학생들과 함께 영어로 수업을 들었는데요. 처음 수업을 들을 때 영어로 100% 소통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교수님들한테 다시 질문하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영어적인 측면일 뿐이었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제가 이 아카데미를 졸업할 즈음 ‘부적절한 관계(Inappropriate Relationship)’라는 제목의 코미디 영화를 졸업 작품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러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나라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왔습니다. 제가 배우고자 하는 ‘소통’이 영어를 통한 ‘언어적 소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소통의 도구’는 바로 ‘영상’이며, 저는 이것을 배우기 위해 이 나라에 왔고 지금 이 순간 제 앞에 있는 여러분들과 비로소 ‘영상으로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라고 연설을 마치자 갑자기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평소에 저에게 무관심했거나 혹은 저를 차갑게 대했던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갑자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터트리는데 저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고 비로소 저들과 ‘영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PD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PD는 ‘영상’이라는 언어를 통해 보는 사람과 서로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는 직업이고 이것은 때론 힘들지만 내가 만든 ‘영상’을 통해 시청하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하나’가 되는 놀라운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어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PD님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승면 PD :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렸을 때 형들이 주로 오른손으로 밥 먹는 것을 보고 저는 7살 때 ‘왼손으로 한 번 밥을 먹어 볼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결국 왼손잡이가 됐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대다수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PD님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승면 PD : 늦었지만 저는 의과대학 진학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인생 이모작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미 PD로만 30년 이상을 살았어요. 인생 이모작을 위해 이제는 의사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설령 의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도전’하는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