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최유리 기자] 지난해 지구는 또다시 기후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기상학회가 발간한 연례 ‘기후 현황(State of the Climate)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농도와 지구 평균 기온, 해수면 상승, 빙하 손실 등 주요 지표가 일제히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보고서는 58개국 589명의 과학자가 위성, 기상 관측소, 해양 부표, 빙핵 시료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주요 온실가스는 모두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22.8ppm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52% 증가했다. 특히 2023년 대비 증가폭은 지난 60년 동안 가장 빠른 속도와 맞먹는 수준으로, 전문가들은 화석연료 연소와 농업이 여전히 최대 배출원이라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증가는 대기 중 수증기량 증가와 토지 탄소 저장 방식의 변화 등 기후 피드백을 강화해 지구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지구 표면 온도는 2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1991~2020년 평균보다 0.72도 높았으며, 이는 2023년 중반부터 2024년 봄까지 이어진 강력한 엘니뇨의 영향이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는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를 기록했고, 폭염은 과거 드물던 시기에도 장기간 이어졌다. 두바이에서는 하루 만에 250㎜의 비가 내려 연평균 강수량의 세 배를 기록하는 등 극단적 강수 현상이 나타났으며, 반대로 일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해양 온난화는 더욱 뚜렷했다. 지난해 상반기 전 세계 해수면 온도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2023년보다 평균 0.06도 높았다. 수십 년간 지속된 온난화에 엘니뇨가 더해지면서 해양 열파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산호초 백화, 어류 이동, 먹이망 교란 등 생태계 전반에 충격을 주었고, 해양은 평균 100일 이상 열파에 시달렸다.
해수면은 13년 연속 상승해 1993년 대비 10cm 이상 높아졌다. 바닷물의 열 팽창과 그린란드·남극·빙하의 얼음 손실이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해안 홍수 위험과 담수 자원의 염수 침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북극은 두 번째로 더운 해를 기록했고, 가을 기온은 관측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남극의 해빙 면적은 최소·최대 모두 두 번째로 작은 수준에 머물렀으며, 기준 빙하 58개 모두가 후퇴해 55년 관측 사상 최악의 손실을 보였다. 베네수엘라는 마지막 빙하를 잃었고, 콜롬비아의 코네헤라스 빙하는 완전히 사라졌다.
기후변화는 극한 기상재해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열대성 폭풍은 82개로 평년보다 적었으나 피해는 막대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헬레네가 200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갔고, 불과 2주 뒤 허리케인 밀턴이 플로리다를 강타하며 주 역사상 가장 짧은 간격으로 두 개의 초강력 허리케인이 상륙하는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에서는 슈퍼 태풍 야기가 중국과 베트남을 휩쓸어 8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보고서는 해수 온도의 상승이 폭풍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강화시키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J. 스텐스루드 미국기상학회 회장은 “기후 현황 보고서는 전 세계 연구자들이 협력해 작성하는 과학적 이정표”라며 “철저히 검증된 분석 결과는 지구 환경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구 기온이 계속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현실은 기후변화가 이미 진행 중임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기상학회 학술지 ‘Bulletin of 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