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바닷속을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제는 우리 밥상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 실험으로 입증됐다. 영국 연구진이 처음으로 채소 조직 내부에서 나노 크기의 플라스틱 입자가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가 단순히 해양 생태계의 위협을 넘어 인류의 식품 안전과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임을 보여주고 있다.
플리머스대 연구팀은 무(radish)를 이용한 실험에서 플라스틱 나노입자가 뿌리를 뚫고 식용 조직까지 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노플라스틱은 1cm의 백만분의 1 크기로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뿌리에서 흡수돼 줄기와 잎, 먹을 수 있는 부분까지 축적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험 결과 노출된 플라스틱 입자의 약 5%가 식물 내부로 흡수됐으며, 이 가운데 약 4분의 1은 식용 조직에 자리 잡았다. 잎에서도 흔적이 남아 전체 흡수량의 10%가량이 축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플라스틱 입자가 단순히 뿌리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식물 전체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다.
이 같은 결과는 식물 뿌리의 방어막으로 알려진 ‘카스파리안 스트립(Casparian strip)’이 나노플라스틱을 완전히 걸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시사한다. 연구를 이끈 네이선 클라크 박사는 “식물 내부로의 유입은 이번이 처음으로 입증된 사례”라며 “이는 플라스틱 입자가 농산물 안에 축적될 수 있고, 그 농작물을 섭취하는 동물과 인간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특정 채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농작물에서 유사한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앞서 어류와 조개류에서 나노플라스틱이 빠르게 축적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그 범위를 육상 식물로 확장하며,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식물성 식단 역시 플라스틱 노출 경로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처럼 해산물과 채소 모두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됨에 따라 인류는 바다와 육지 어느 곳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플리머스대는 지난 20여 년간 미세플라스틱 연구를 주도하며, 해양 심층부터 산 정상까지 다양한 극한 환경에서 플라스틱 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또한 타이어 마모, 세탁 시 발생하는 섬유, 페인트, 폐기물 분해 등 다양한 발생 원인을 추적해 국제 사회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연구를 총괄한 리처드 톰프슨 교수는 “지금까지 조사한 모든 환경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발견했지만, 이번 연구는 채소에서도 그 축적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나노플라스틱의 특성상 감지가 어렵고, 인체나 동물의 조직 안에 들어가면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작은 양이더라도 매일 꾸준히 섭취될 수 있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이고 누적적인 방식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연구진은 이러한 플라스틱이 가축의 사료를 거쳐 다시 인간에게 전달되는 식품 순환 고리도 우려하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이 꾸준히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이번 연구는 식품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앞으로 다양한 작물에서의 흡수 수준과 영양·건강 영향에 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인류가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 얼마나 취약한지를 이해하는 것이 시급하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이상 바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밥상에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환경 정책과 식품 안전 대책 마련에 있어 중요한 경고 신호가 될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환경연구(Environmental Research)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