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화병, 감정 억제가 불러온 전신 증상…신경정신질환의 교차점서 나타나는 이상 반응

  • 등록 2025.07.0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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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참았어야 했을까, 말했어야 했을까.” 많은 중년 여성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 특히 갱년기와 겹치는 시기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 시절 미처 쏟아내지 못한 말들과 삼켜버린 울분은 시간이 흐르며 몸의 이상 신호로 변해 돌아온다. 의학적으로는 이를 ‘화병(鬱火病, Hwabyung)’이라 부른다.

 

화병은 억눌린 감정이 장기간 누적되며 신체와 정신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식 정신의학적 질환이다. 특히 한국 문화권에서 여성들이 가정 내 역할, 억제된 표현,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경험이 많아, 이 병은 ‘한국형 정신질환’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유 모를 가슴 답답함, 얹힌 듯한 목과 가슴의 덩어리감, 쉽게 붉어지는 얼굴, 두통과 편두통, 소화불량, 어지러움. 여기에 잠이 오지 않거나 자주 깨는 불면증, 눈의 피로, 전신의 근육 긴장, 자율신경실조증 같은 전신 증상이 이어지며 환자는 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대체로 ‘이상 없음’. 결국 이 상태는 신경정신과를 찾아야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여기에 사회공포증이나 불안장애, 강박장애와 같은 기저 정서 문제가 깔려 있을 경우, 감정의 누적은 더 빠르고 깊게 진행된다. 몸으로 느껴지는 통증과 불쾌감은 실제 생리적 이상과 함께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심계항진, 다한증, 위장장애, 진전증(손떨림), 안구피로감 등으로 연결된다.

 

문제는 화병이 단독 질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환자들이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 전환장애, 망상증과 같은 신경정신질환의 복합적 스펙트럼 안에서 이 증상을 경험한다. 특히 갑자기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는 공황발작, 의미 없이 반복되는 생각에 시달리는 강박증, 과거 트라우마로 인해 반복적으로 정서가 무너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과의 교차는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최근 들어 브레인포그(Brain Fog)처럼 ‘멍함’,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와 같은 인지기능 저하 증상 또한 화병의 연장선에서 관찰되고 있다. 이는 뇌신경질환과의 감별 진단을 어렵게 만들며, 어떤 경우에는 초기 치매로 오인돼 불필요한 공포를 증폭시킨다.

 

 

화병과 자주 동반되는 주요우울장애는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한 감정과 함께 흥미상실, 공허함, 의욕 저하, 무기력감을 동반하는 정서적 병리 현상이다. 특히 화병의 주요 발병연령인 중년 혹은 중년 이상의 여성은 갱년기의 극심한 호르몬 농도 변화로 인해 갱년기 우울증 및 노인 우울증 관련해 이환되기 쉽다. 잠들기 어렵거나, 깊이 잠들지 못해 자다가 자주 깨거나, 아침에 너무 일찍 기상하게 되는 증상을 보이게 되는 우울증또한 화병에서 이환되기 쉬운 증상이다.

 

현대 한의학에서는 담적병, 자율신경장애, 만성피로증후군 등과 함께 화병을 ‘심-간-위장’ 기능의 복합 불균형으로 접근한다. 특히 억눌린 감정이 위장의 열로 이어지고, 그 열이 뇌신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위장기능 강화와 감정순화 치료를 함께 진행한다.

 

종합해 보면 화병 환자군은 신경 조절 능력이 감소해 신체적 감정적 자극에 대한 반응력이 제한돼 있고, 다양한 동반 질환에 취약하다. 따라서 우울 척도, 불안 척도, 불면증 척도, 공황장애 병발 여부, 자율신경 기능 이상, 심박 변이도 등 다양한 지표를 면밀히 살펴보고 그 다양한 임상 양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화병의 유발 원인이자 합병증이 되는 다른 정신과 질환을 예방하고 완화할 뿐 아니라 자율신경실조증 증상으로 무너진 인체 스트레스 저항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창원 휴한의원 김한나 원장)

김한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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