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뉴욕시가 문화와 예술의 흔적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새로운 자원으로 되살리는 ‘제로웨이스트’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머티리얼스 포 더 아츠(Materials for the Arts·MFTA)’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공연 무대, 방송 촬영, 전시 등에서 사용된 의상과 소품을 수거해 공립학교와 비영리단체에 재배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HBO 인기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의 정장 의상, 브로드웨이 공연 ‘블루맨 그룹’의 페인트 도구 등이 MFTA를 통해 다시 사회에 제공됐다. 원래라면 폐기물로 사라졌을 자산들이 교육 현장과 지역 커뮤니티에서 창의적 학습 자료로 재탄생한 것이다. 뉴욕시 문화국은 이를 통해 폐기물 감축과 동시에 예술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MFTA는 단순한 기부 프로그램을 넘어, 뉴욕시가 추진하는 ‘제로웨이스트’ 정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한 해 동안만 약 320만 파운드(약 1450톤)의 물품이 재배포됐으며, 이는 약 740만 달러 상당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기부 규모는 2023년 대비 14% 증가했다. 기업, 예술단체, 방송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성과를 뒷받침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교육 현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공립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브로드웨이 무대에 쓰였던 소품을 창작 수업에 활용하며, 지역 비영리단체는 기증받은 물품을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나 청소년 예술 교육에 이용한다. “학생들이 직접 브로드웨이에서 쓰였던 무대를 만져보고 창작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의력 교육 효과가 크다”는 현장의 평가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뉴욕처럼 공연 소품을 체계적으로 기부·재배포하는 제도는 아직 없고, 전시 운영 과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전시에서 탄소 배출량을 직접 산정하고, 전시 디자인과 폐기물 처리 방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전시 제작·운영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과 자원 소모를 줄이려는 ‘지속가능 전시 실험’이었다.
대구미술관은 ‘지구의 날’을 맞아 시민 참여 기반의 업사이클링 이벤트를 진행했다. 관람객이 플라스틱 병뚜껑을 가져오면 이를 재활용해 액세서리로 제작하는 ‘지구미술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또한 전시 교체 과정에서 폐자재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듈형 벽을 도입하고, 인쇄물을 줄이는 등 운영 측면에서도 친환경적 방식을 도입했다. 예술 전시를 매개로 자원 선순환의 의미를 체험하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문화·예술 자산 재활용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연, 방송, 전시가 끝난 뒤 다량의 소품과 의상이 버려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를 교육기관이나 복지시설에 제공하는 구조를 마련할 경우 환경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사회적 자원 재분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폐기물 감축을 넘어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고, 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될 수 있다.
뉴욕의 사례는 제로웨이스트가 ‘환경’의 언어를 넘어 ‘문화’와 ‘교육’의 언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공연예술계와 지자체, 중앙정부가 협력해 문화 자산을 사회적 자원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술의 흔적이 쓰레기가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창작 자원이 되는 순간, 지속가능성은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