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국제 유제품 시장에서 ‘동물복지’를 간판처럼 내세워 온 페어라이프(이하 Fairlife)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미국 비영리단체 ARM(Animal Recovery Mission)이 최근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Fairlife의 공급 농장에서 소와 송아지를 대상으로 한 폭행과 비위생적 사육 환경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2019년 동일 단체의 잠입 조사 이후 개선을 약속했던 Fairlife의 공언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Fairlife는 2012년 미국에서 프리미엄 유제품 브랜드로 출범해, “철저한 동물복지 기준과 투명한 관리 체계”를 강조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Coca-Cola가 투자에 나서며 대규모 유통망을 확보했고, 현재는 미국 내 대표적인 고급 유제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ARM은 2019년 인디애나주의 한 농장에서 송아지들이 구타당하고, 젖소들이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는 장면을 영상으로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Fairlife는 일부 계약 농장과의 관계를 끊고, 공급망 개선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는 이러한 약속이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다시 확인시켰다. ARM은 2025년 6월 뉴멕시코주의 한 농장에서 또다시 송아지가 발로 차이거나 도구로 맞는 영상과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Fairlife 측은 “문제가 된 농장과의 거래를 중단했다”고 해명했지만, ARM은 여전히 공급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결국 Fairlife가 내세워온 ‘엄격한 동물복지 기준’이 실질적으로는 기업 홍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특정 기업의 일탈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와 동물권 단체들은 “유제품 산업 구조 자체가 동물에게 고통을 수반한다”고 지적한다. 젖소는 지속적인 임신과 착유 과정에서 신체적 스트레스를 겪고, 송아지는 태어난 직후 어미와 분리돼 격리된 채 성장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 속에서 ‘동물복지 마케팅’은 기업 이미지 제고에만 활용될 뿐, 실제 동물의 삶을 개선하는 효과는 미비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불신도 커지고 있다. Fairlife는 동물복지를 내세운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으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을 늘려왔지만, 학대 의혹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면서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기업 자율 규제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독립적 감시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사회 역시 이번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유제품 시장에서도 ‘친환경’과 ‘동물복지’를 강조하는 마케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생산 현장에서의 검증 체계가 미흡하다면, Fairlife 사례처럼 ‘광고와 현실의 괴리’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식물성 대체 유제품 시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유제품 산업 전반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제도적 보완은 더욱 시급하다.
Fairlife 사태는 동물복지라는 가치가 단순히 기업의 광고 문구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를 향한 시민들의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이번 논란은 유제품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