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최유리 기자] 세계적으로 건강과 기후위기가 동시에 심화되는 가운데, 인간과 지구의 안녕을 함께 지키는 식단이 주목받고 있다. ‘지구건강식단(Planetary Health Diet·PHD)’을 충실히 따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사망 위험이 낮고, 식단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든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된 이번 연구는 미국과 영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 관찰한 자료를 종합해 지구건강식단 준수 정도와 사망률, 그리고 만성질환 발생률 사이의 연관성을 살폈다. 또한 식단에 따른 환경적 영향을 분석해 인간 건강과 지구 환경에 미치는 효과를 동시에 조명했다.
지구건강식단은 국제 연구기구인 EAT-랜싯 위원회가 제안한 식단으로, 채소·과일·통곡물·콩류·견과류를 중심으로 하고, 붉은 고기와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은 최소한으로 섭취하는 방식을 따른다. 단순히 개인의 건강 증진에 그치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식생활 모델로 제시돼 왔다.
연구진은 미국 NHANES(전국건강영양조사) 약 4만3천 명과 영국 UK 바이오뱅크 약 12만5천 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지구건강식단 점수가 높은 집단은 체중이 낮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흡연율도 낮았다. 미국에서는 지구건강식단을 가장 충실히 따른 그룹이 전체 사망 위험이 23% 낮았고, 심장질환과 기타 질환 사망 위험도 각각 19% 줄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는데, 특히 호흡기 질환 사망 위험이 61%나 감소해 주목됐다.
또한 연구진은 두 코호트 자료를 기반으로 식단이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산출했다. 그 결과 붉은 고기와 유제품이 가장 큰 배출원을 차지했으며, 지구건강식단 점수가 높을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습관 변화가 곧바로 기후 대응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메타분석을 통해 37개 연구, 320만 명 이상을 종합한 결과에서도 지구건강식단을 잘 지킨 사람들이 전체 사망 위험 21%, 암 사망 위험 17%,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17% 낮았다. 아울러 대장암, 폐암, 당뇨병 등 주요 만성질환 발생 위험 역시 크게 줄었다.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 특성상 자기 보고식 식단 기록과 측정 오류 가능성이 있으며, 완전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 더 나아가 세계 각지의 대규모 인구 집단에서 일관되게 확인된 결과는 지구건강식단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 건강 지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 차원에서는 콩류, 통곡물, 과일, 채소, 견과류를 늘리고 붉은 고기와 고지방 식품을 줄이는 것이 실천 방법이다. 공동체와 보건 시스템 차원에서는 기후 행동과 영양 정책을 결합해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인류의 식탁이 곧 미래의 지구를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식습관 변화가 삶의 질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