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최유리 기자] 식물이 새로운 산업 혁신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UC 데이비스 연구진이 식물을 활용한 차세대 바이오제조 기술을 통해 지구와 우주에서 모두 지속 가능한 생산 방식을 구현하려는 도전에 나섰다. 이번 연구는 환경 부담을 줄이면서도 의약품과 식품, 소재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미래 친환경 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UC 데이비스에 300만 달러를 지원해 자원이 크게 제한된 환경에서도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 개발을 돕는다. 현재 미국 내 바이오제조는 복잡한 인프라와 고도의 전문 인력, 대규모 자본이 집중된 특정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농촌이나 소외 지역, 전쟁터, 심지어 우주처럼 자원이 부족한 공간에서는 사실상 적용이 불가능하다. 연구팀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식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생산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공급망 불안정 문제까지 완화할 계획이다.
‘엔지니어드 플랜츠 인 컬처(EPiC)’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번 연구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실험을 진행한다. 엔지니어링된 식물 세포, 식물 배아, 빠르게 자라는 수생식물인 개구리밥 등을 활용해 단순한 바이오리액터 같은 시스템에서 재배를 시도한다. 일부는 값싼 배양액만으로, 또 일부는 햇빛과 이산화탄소만으로 성장하도록 설계됐다. 연구팀은 벼 세포 현탁 배양, 호두 배아 배양, 개구리밥 세 가지 플랫폼의 성능을 비교·분석할 예정이다.
프로젝트는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세포주 개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폐기되는 식물성 바이오매스를 재활용하며, 생산 및 가공 효율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또한 다양한 생산 숙주에 맞춘 새로운 형태의 바이오리액터를 저비용 3D 프린팅으로 제작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다. 상용화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 모델도 함께 마련한다.
프로젝트 총괄은 UC 데이비스 화학공학과 명예교수 카렌 맥도널드가 맡았다. 그는 이번 연구를 “40년 연구 경력의 정점”이라고 표현했다. 아바야 단데카르 식물과학과 교수, 스티븐 로빈슨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소멘 난디 화학공학과 겸임교수, 데니얼 제이미슨-맥클렁 생명공학 프로그램 소장 등도 참여하며, 액시엄 스페이스와 호주연구위원회 산하 ‘우주 식물 센터(Plants for Space·P4S)’가 협력 기관으로 함께한다.
액시엄 스페이스의 개빈 델리아 글로벌 제약 부문 총괄은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에 미세중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일은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혜택을 줄 수 있다”며 “우주라는 전략적 환경은 지구와 우주를 아우르는 혁신적 성과를 낳을 수 있는 실험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립과학재단의 ‘미래 제조(Future Manufacturing)’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NSF는 올해 총 2550만 달러를 투입해 36개 기관과 기업에 7건의 연구 과제와 9건의 시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프로그램은 바이오제조, 사이버 제조, 친환경 제조 등을 중점으로 하며, 일부는 양자 제조와의 융합 연구도 포함한다. 학제 간 협력을 통해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제조 역량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