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지구의 담수 저장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는 매년 약 3240억㎥의 담수를 잃고 있으며, 이는 약 2억8000만명의 연간 물 수요에 해당하는 규모로 알려졌다. 담수 저장량 감소는 이미 물 부족을 겪는 지역사회에 추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는 네덜란드 트벤테대 연구진이 위성 관측 자료와 토지 이용, 작물 생산, 기후 정보 등을 결합해 실시했다. 지표수·토양수·지하수의 장기 변화를 10㎞ 격자 단위로 분석해 국가 평균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지역별 건조 패턴을 확인했다. 연구팀을 이끈 릭 호게붐 트벤테대 부교수는 물 발자국을 활용한 소비·생산 전 과정의 물 사용량을 추적해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여러 지역이 이미 ‘적자 상태’에 놓여 있으며, 물 공급이 줄고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가 겹치고 있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과 집약 농업 지역 아래에서 빠른 건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저장량 변화가 식량 가격·고용·이주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농업 부문의 물 사용이 담수 고갈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유엔 추정치에 따르면 세계 농업은 전체 담수 취수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작물 재배 과정에서 상당량의 물이 증발산을 통해 대기로 이동하기 때문에, 사용된 물의 상당 부분이 지역 내 재이용이 어렵게 된다. 특히 건조 지역에서 양수 기반 관개 농업이 지속될 경우 지하수위가 점차 낮아져 취수 비용이 상승하고, 영세 농가가 물 접근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산업·가정용 수요 역시 도시 확장과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일부 국가에서는 한정된 물을 농업·주거·에너지 부문 중 어디에 배분할지 놓고 정책적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는 가뭄 시기에 이러한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제 교역 구조도 물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가상수’ 개념에 따르면 식품·의류·전자제품 등은 생산 단계에서 사용된 물을 간접적으로 포함한 채 거래된다. 농산물 교역이 전 세계 농업용수 소비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으며, 이는 특정 지역의 불안정한 수자원이 타 지역의 소비를 떠받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 스트레스는 한 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담수 대비 실제 취수량의 비율로 측정된다. 이번 분석에서는 북인도, 중미, 동유럽, 중동 등지에서 수요 증가와 저장량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가뭄에 따른 물 부족이 매년 약 60만~90만명의 고용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농촌 지역, 여성, 고령층의 생계가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담수 감소는 생태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지하수위 하락과 하천 유량 감소는 습지 소멸, 어류 개체 감소, 토양 퇴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고서는 담수 고갈률이 소폭 상승할 경우 산불 발생 가능성이 25% 이상 증가할 수 있으며, 생물다양성 보전지역에서는 약 50%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보고서는 농업 부문의 효율화가 가장 즉각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 생산성이 높은 지역으로 작물 재배지를 조정할 경우 매년 약 1370억㎥의 담수를 절감할 수 있다는 추정도 포함됐다. 이는 1억명 이상이 연간 필요로 하는 물 사용량에 해당한다. 아울러 관개 효율 개선, 누수 저감, 스마트 관개 일정 등은 동일한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물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각국 정부는 물 가격에 희소성을 반영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효율적 농업·도시 물 관리 인프라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업과 농가 역시 물 발자국 분석을 활용해 공급망을 점검하고, 물 부담이 덜한 지역으로 생산을 조정하는 등의 노력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세계은행은 이번 보고서가 담수를 탄소배출량이나 일자리 지표처럼 ‘계량 가능한 자원’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위성 기반 저장량 분석과 경제 모델, 국제적 물 스트레스 지표를 결합하면 위기 발생 전 ‘핫스폿’을 보다 명확히 식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게붐 교수는 “상황은 우려할 만하지만 대응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하며,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정책적 개입이 이뤄질 경우 담수 고갈 속도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는 세계은행의 글로벌 워터 모니터링 보고서 시리즈로 공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