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0%를 차지하는 식품 시스템이 인류의 건강과 기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연구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생산 방식을 바꾸면 지구의 회복력과 인간의 복지를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음식은 개인의 취향과 문화가 담긴 가장 사적인 영역이지만, 동시에 지구의 미래를 좌우하는 행성적 사안이기도 하다. 농작물 재배, 식품 가공, 운송, 소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EAT-랜싯 위원회(EAT-Lancet Commission)가 발표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공정한 식품 시스템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식품 생산과 소비 전반에 걸친 구조적 전환을 통해 2050년까지 식품 시스템의 기후 영향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코넬대학교 글로벌개발학과 마리오 에레로 교수가 주도했으며, 전 세계 식품 시스템의 미래 시나리오를 모델링을 통해 구체화했다. 에레로 교수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학문과 산업, 정책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며 “식품 시스템 전환은 그 중심에 있는 과제”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식품 시스템은 기후, 생물다양성, 담수, 토지 이용, 영양 순환 등 지구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행성 한계(planetary boundaries)’ 다섯 영역에 가장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식단을 개선하고 생산 방식을 바꾸면 매년 최대 1500만 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공식품 중심의 식습관에서 벗어나 과일, 채소, 콩류, 통곡물, 견과류 등으로 식단을 전환할 때 가능한 변화다.
보고서는 또 하나의 불평등한 현실을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충분한 칼로리가 생산되고 있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건강한 식단에 접근하지 못한다. 반면 상위 30%의 부유층이 식품 관련 환경 피해의 70% 이상을 유발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자원 집약적 생산에 대한 보조금, 미비한 사회안전망, 영양 식품의 높은 가격 등 정책적 결정의 결과라고 보고서는 비판했다.
연구팀은 단순히 식단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지속 가능한 식품 시스템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 토양과 생물다양성 회복, 식품 손실 및 폐기물 감소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코넬대의 다니엘 메이슨-드크로즈 연구원은 “식품 시스템 전환은 환경 부담을 전반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농업 생산성과 자원 효율성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농업 △산림 파괴 중단 △식품 낭비 감축 △공정한 노동 기준 강화 등 8개 실행 영역을 제시했다. 각국은 문화와 경제 여건에 따라 맞춤형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핵심은 정책과 시장, 시민의식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에 그치지 않는다. 건강한 식품 시스템은 영양 개선과 공중보건 향상은 물론, 농촌의 소득 증대와 가격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기후 충격에 취약한 저소득층 가구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보고서는 정부가 식품 정책을 국가 기후 계획에 포함하고, 식단의 질과 음식물 쓰레기 감축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금융기관과 기업이 저배출 사료, 냉장 유통망, 토양 회복 기술 등 지속 가능한 혁신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코넬 지속가능성센터의 패트릭 베어리 디렉터는 “이번 연구는 정책 입안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식단 선택이 지구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며 “음식이 더 이상 문제의 원인이 아닌, 해법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음식은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공공 급식, 식품 산업, 소비자 선택이 하나로 연결될 때 식탁 위의 변화가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