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안이 없어 고기를 먹어야 하는 순간이나 도저히 먹고 싶어서 못 참겠을 때가 있으면 육식을 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내 신념이 무너진 건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육식주의자도 아니에요. 모순적인 채식주의자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30대 직장인 김모(여)씨

비건의 엄격한 식단 때문에 채식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면 오산이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고 모든 식습관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국내 채식인구는 150만명을 돌파해 10년새 10배 증가폭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가치소비 트렌드를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동물성 제품의 섭취·소비를 지양하는 비거니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채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진입장벽이 낮은 단계는 플렉시테리언이다. 플렉시테리언은 유동적인 채식주의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채식주의를 지향하지만 사정상 또는 스스로 허용한 기준 내에서 육류를 먹기도 한다. 현대 사회의 비윤리적인 대량 축산업에 반대해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된 육류’만 거부하거나 특정 육류만 먹지 않는 유형도 여기 속한다. 집에서는 비건을 실천하지만 회식이나 공식적인 식사자리에서는 타협을 보는 경우도 허용된다.

채식의 최고 단계인 비건은 모든 종류의 고기나 달걀, 유제품은 물론이고 꿀벌이 애써 만든 꿀조차 섭취를 거부한다. 물론 이론적으로 타당하고 환경을 위한 이상적인 신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활 환경에서 비건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비건이 예전보다는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유난스럽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군대나 급식 등 단체 생활에서 배식을 받아 식사하는 경우 혼자서 ‘채식’을 외치는 모습은 고운 시선을 받기 어렵다.
즉, 채식이란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사회적인 시선과 환경적 요건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유럽, 미국 등 채식주의가 일찍 자리 잡은 해외와 달리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어렵고 불편한 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의식과 신념은 갖고 있지만 애초에 포기하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플렉시테리언은 채식의 출발점으로 삼기 적합한 식습관이다. 새해 소망 3대장으로 불리는 금연과 금주, 다이어트는 많은 이들이 염원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실패라고 생각할 때 오는 자책감과 자신감 하락이다. 이 때문에 시도조차 않는 일도 많다. ‘어차피 실패할텐데’라는 생각이 실천을 가로막는다. 플렉시테리언은 적어도 실패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