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채식연합(KVU)에 따르면 국내 채식주의자는 약 100만명이다. 이는 국가통계포털(KOSIS)의 2019년 추계 국내 인구수 5000만명 중 약 2%에 해당한다. 가끔 육류도 먹는 채식 유형인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까지 합치면 1000만명 이상이 채식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건강한 삶과 환경 및 동물권 보호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에 대한 소비자 욕구가 늘고 있지만 제공되는 정보는 한정돼 있다. 각각의 이유와 신념으로 채식에 도전하는 (예비)채식인을 위한 필수정보를 모아봤다.
◆ 7가지 채식 유형
멀게만 느껴지는 채식, 알고보면 진입장벽이 높은 것도 아니다. 채식의 범주에는 여러 단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완전 채식 단계인 비건 외에도 유제품 또는 난류를 섭취하는 채식, 어패류나 가금류를 먹을 수 있는 채식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각자 동기 또는 필요에 맞게 채식을 선택할 수 있다. 채식에도 허용되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뉘는데 크게 베지테리언(Vegetarian)과 세미 베지테리언(Semi Vegetarian)으로 나눌 수 있다. 차이점은 육류 섭취 여부다.
베지테리언은 육류를 전혀 섭취하지 않지만, 세미 베지테리언은 조류와 어류는 섭취한다. 베지테리언과 세미 베지테리언 또한 동물성 식품 섭취 여부와 가금류 섭취 여부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허용되는 식품군에 따라 채식은 7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건(vegan)은 과일‧채소‧곡물류‧식물성 음식을 섭취하는 채식주의자다. 육류나 생선 등 동물성 식품은 먹지 않는 것으로 가장 높은 단계의 채식주의다. 동물에게서 나온 식품은 전혀 먹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유제품도 이에 포함된다. 벌꿀이나 젤라틴도 섭취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건을 하는 채식주의자는 음식 이외에 전반적인 생활도 비건을 추구한다. 가령 구스다운점퍼럼 동물 가죽이나 털로 만든 옷이나 퍼 머플러, 동물실험을 진행한 화장품 브랜드는 사용하지 않는다. 동물의 고통과 희생을 토대로 만들어진 용품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된다.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은 육류와 어류, 가금류, 달걀 등 동물성 식품은 섭취하지 않지만, 유제품은 허용하는 채식주의를 일컫는다. 치즈나 요거트, 우유, 버터 등은 섭취한다. 단백질은 대부분 콩류에서 섭취하는 편이다.
오보 베지테리언(Ovo Vegetarian)은 육류, 어류, 가금류, 유제품을 먹지 않지만 동물의 알, 즉 달걀은 먹는 유형이다.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 Ovo Vegetarian)은 육류, 어류, 가금류 등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과 달걀은 허용하는 채식주의자다. 사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채식주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이다.
이는 우리나라는 물론 서양에서도 달걀이 주된 식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채식주의자라 할 수 있다. 배우 김효진도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에 속한다. 육류 소비와 환경의 문제점을 인식해 채식을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처럼 육식은 하지 않지만 유제품과 달걀, 여기에 해산물까지 먹는 경우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이라 부른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육류만 먹지 않을 뿐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면서 적절하게 채식을 한다. 배우 이하늬와 방송인 이효리가 페스코 베지테리언에 속한다.
육식을 하는 채식주의도 있다. 폴로 베지테리언(Pollo Vegetarian)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처럼 유제품과 달걀, 해산물에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도 먹는 채식주의자다. 가금류 섭취가 허용되는 이유는 소나 양, 돼지에 비하면 환경에 미치는 유해성이 적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으로 발생하는 소, 돼지 등에 비해 가금류의 탄소 배출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폴로 베지테리언 중에는 환경에 관심이 생겨서 채식을 시작한 사례가 많다.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은 가장 최근에 생긴 채식주의자다. 기본적으로는 채식을 지향하지만 일정 기준 안에서 육식을 하기도 한다. 다만, 비윤리적인 대량 축산업에 반대하기에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되는 육류는 섭취하지 않는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윤리적 농장에서 생산되는 육류만 소량 섭취할 수 있다.
◆ 채식, 어떻게 시작할까?
우선 채식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동물의 도축과정 등 비윤리적인 면 때문인지 축산업의 탄소배출량을 비롯해 환경 이유 건강상 때문인지 동기를 생각해야 한다. 최근에는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채식을 선택하는 이가 늘고 있는 추세다.
만약 통풍이나 소화기관, 알레르기 등 건강상 문제 때문에 채식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달걀이나 해산물은 섭취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채식 식단이 비만이나 당뇨병, 암 등 각종 질환의 발병 위험을 낮춰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영양소를 잘 구성한 식단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채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물반찬, 쌈채소 위주로 섭취할 경우 영양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미밥은 물론 보리나 귀리, 메밀 등 다양한 곡물로 밥을 지어 먹고 흰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보라색 등 5가지 색깔의 채소 과일을 섭취해야 한다.
특히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비건을 시도하다보면 칼슘이나 비타민B12, 철분, 비타민D 등 영양소 섭취가 부족할 수 있다. 채식으로 얻기 가장 힘든 영양소로 비타민B12가 손꼽힌다. 김이나 미역, 다시마, 파래 등 해조류와 된장, 청국장 등 발효식품을 잘 챙겨먹어야 비타민B12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채식을 시도한다면 육류를 처음부터 끊는 것보다는 차츰 먹는 횟수와 양을 줄여나가는 것을 권장한다. 주 2~3회 육류를 섭취했다면 주 1회 한 접시 정도만 섭취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육류로 얻는 단백질이 줄어드는 것을 고려해 콩이나 달걀 섭취는 늘려야 한다. 특히 렌틸콩과 두부, 퀴노아, 시금치에 단백질이 많이 함유돼 있다.
처음부터 엄격하게 채식을 할 경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절대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재료와 아주 가끔 소량은 먹는 재료도 미리 정해놓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에 못 이겨 한 두 달만에 포기하는 것보다는 아주 가끔 육류도 허용하면 채식주의의 길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채식 식단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면 채식주의자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 주위에 채식하는 이가 없으면 포기하기 쉬워진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와 그를 둘러싸고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채식주의자는 성격이 까다롭다는 인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른 채식주의자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가령 네이버카페 한울벗채식나라는 2004년 10월 개설된 이후로 현재 8만4800여명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앞서 그린피스는 채식이 어렵지 않고 천천히 시작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채소한끼, 최소한끼'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린피스는 "하루 한 끼 채식으로 육류 소비를 줄이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