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 파괴가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환경 파괴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 가령 홍수와 가뭄, 폭염이 불안, 우울증, 자살 등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 경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온난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온난화 현상은 해수면 상승, 해안선 침수, 가뭄과 대기근, 수백만 종의 동식물의 죽음 등을 야기하고 있다.
2018년 11월 발표된 제4차 국제기후평가(NCA)는 기후변화가 환경, 경제,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향후 10년간 전지구적 변화의 동향을 언급했다. 보고서는 이상기후로 인한 다방면의 스트레스가 불안, 우울증, 자살 등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사회정책 및 보건학 교수 로렌스 팰린카스는 환경 전문 매체 더데일리클라이밋에 ‘가장 간과되기 쉬운 기후변화 문제가 정신건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했다. 팰린카스 교수에 따르면,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 기후에 노출된 사람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 폭염에 노출된 사람은 사망이나 중상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더 높고 장기간 가뭄에 노출된 사람은 우울증과 대인관계 폭력, 자살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해수면 상승과 이주를 겪은 사람은 대인관계 갈등과 불안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다.
기후난민, 기후이민자도 늘고 있다. 유럽에서는 기후난민을 뜻하는 ‘클라이밋그런츠(Climigrants)’가 꾸준히 증가했다. 가령 지난 7년간 유럽으로 온 이주자의 상당수가 10년 이상 가뭄을 겪은 아프리카의 사헬 지역에서 왔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정신질환 문제에 더욱 취약하다. 워싱턴 포스트와 카이저가족재단이 미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 70% 이상이 기후변화가 자신 세대의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뷰 대상자 중 약 57%가 기후변화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고 보고했다.
◆ 기후 변화가 정신질환에 직접적인 영향 미쳐
정신건강 문제가 기후 변화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기 보다는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불안감을 조성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한 불안감을 넘어서서, 기후 변화 자체가 정신건강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하버드대학 닉 오브라도비치 교수팀은 2002~2012년 미국 거주자 약 200만 명의 정신건강 데이터를 무작위 추출해 기상 데이터와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열대 저기압, 기온 상승, 강수량 증가가 정신건강 악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게다가 폭염과 가뭄은 자살률 증가, 정신병원 입원율 증가와도 연관성을 보였다.
세부적인 데이터를 살펴보면, 월별 기온이 25~30℃에서 30℃ 이상으로 증가했을 때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0.5% 증가했으며, 5년간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정신질환 발병률은 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리케인 등 태풍은 정신질환 발병률을 4%가량 높였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는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이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가능성도 언급했다.
정신 분열증 기후 및 건강 위원회 의장인 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하세 박사는 “상황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기후 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를 야기한다”며 “가령,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밖에서 모임을 하는 대신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게 되고 공동체 의식 저하, 사회성 결여 등 내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신건강 문제 및 정신질환 치료와 관련해 기존의 접근 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하세 박사는 “기후 변화로 인한 정신질환 발병률은 향후 비약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에, 기후 변화가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이는 불안감,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후 변화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 또는 정신질환을 공식화하기 위한 새로운 진단법과 병명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며 “환자 사례를 추적하는 레지스트리를 작성해 이러한 문제와 증상에 대한 이해도 도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