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뉴스=최유리 기자] 저렴한 가공식품이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지구 환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국제 연구에 따르면 비만 증가와 기후위기는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식품 시스템의 구조적 인센티브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나타났다. 식품 생산과 소비 방식이 체중 증가와 온실가스 배출을 동시에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이다.
연구진은 값싼 열량 공급, 긴 유통기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이 전 세계 식생활을 변화시키며 비만 유병률을 높이는 동시에 기후 부담을 키워왔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경우 2035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과체중 또는 비만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 연구진은 이번 종설 연구에서 비만 확산을 개인의 절제력 부족으로 설명하는 기존 시각에 한계를 제기했다. 연구를 이끈 제프 홀리 연구원은 수십 년간 이어진 소비 중심 식품 생산 체계가 과잉 섭취를 구조적으로 유도해 왔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일상적인 식사 선택은 개인의 의지보다 식품 가격, 제품 구성, 판촉 방식 등 이른바 식품 환경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특히 초가공식품은 첨가물이 많고 원재료 비중이 낮은 산업형 식품으로, 섭취량 증가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초가공식품은 대용량 포장과 간편성을 앞세워 한 끼에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도록 설계돼 있다. 씹는 과정이 적고 포만감 신호가 늦게 나타나 과식이 일상화되기 쉽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통제된 임상 실험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확인됐다. 동일한 영양 성분으로 설계된 식단이라도 초가공식품 비중이 높은 경우 하루 평균 약 500킬로칼로리를 더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음식의 질감과 섭취 속도가 포만감 조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체중 증가는 남는 에너지가 체지방으로 축적되면서 발생한다. 식이섬유가 부족하고 소화가 빠른 식단은 호르몬과 뇌 보상 회로를 자극해 지속적인 섭취를 유도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생물학적 반응이 장기적인 체중 증가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식품 시스템은 기후 변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식량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가 배출되며, 산림 훼손과 수자원 고갈도 동반된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식품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과학 평가 기구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이러한 온난화의 상당 부분이 가축 사육 과정의 메탄 배출, 비료 사용, 토지 전환과 관련돼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는 장기적으로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소와 양 같은 반추동물을 중심으로 한 축산업은 환경 부담이 크다. 쇠고기는 콩이나 완두 같은 식물성 식품보다 훨씬 많은 토지를 필요로 하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쇠고기 수요가 증가할수록 산림과 초지가 농지로 전환되며 저장돼 있던 탄소가 대량 방출된다.
연구진은 현재의 식단 구조가 유지될 경우 에너지 부문에서 탈탄소화가 이뤄지더라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한 모형 연구에서는 식품 관련 배출만으로도 기온 상승 억제 목표 달성이 좌절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 공동 참여한 옥스퍼드대 폴 베런스 교수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바꾸지 않고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식단 변화가 기후 대응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는 다시 인간의 건강 부담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이 잦아지면서 과체중 인구는 체온 조절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에서 연간 약 54만6000명이 폭염 관련 사망에 이르렀다는 추정도 제시됐다.
연구진은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개인 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체중 감량 약물이나 비만 수술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값싼 초가공식품이 범람하는 환경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설명이다.
가공식품이 저렴하게 유통되는 배경에는 사회적 비용이 반영되지 않는 가격 구조가 있다. 건강 악화와 기후 피해라는 비용이 사회 전체로 전가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외부효과로 설명한다. 연구진은 설탕 음료나 고열량 초가공식품에 대한 세금이 신선 식품 보조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전면 표시 경고 라벨과 아동 대상 마케팅 규제가 소비 행태를 빠르게 바꿀 수 있는 수단으로 언급됐다. 학교 급식은 채소, 콩류, 통곡물 중심으로 구성해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지역 농산물 활용을 통해 운송 과정의 배출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모든 초가공식품이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가공육이나 저섬유·고열량 제품과 달리, 식물성 원료 비중이 높고 섬유질을 제공하는 포장 식품은 상대적으로 환경 부담이 낮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보다 정교한 분류 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현재의 식생활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며, 정책 전반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현재 비만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전 세계 GDP의 2퍼센트 이상으로 추산되며, 2035년에는 4조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제시됐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