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최유리 기자] 축산업의 환경 부담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식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네덜란드에서 본격화한다. 유럽연합(EU)과 다수의 농업·대체 단백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 컨소시엄이 세계 최초로 배양육 전문 농장 설립에 나서면서 농업 전환의 상징적 모델이 될지 주목된다.
유럽혁신기술연구소(EIT) 푸드와 유럽연합의 공동 지원을 받는 ‘CRAFT 컨소시엄’은 네덜란드에 배양육 농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번 사업은 총 400만 유로 규모의 지원금 가운데 200만 유로를 확보하며 본격적인 개발 단계에 들어섰다.
참여 기관은 리스펙트팜스(RespectFarms), 바헤닝언대학교&연구소(Wageningen University & Research), 모사미트(Mosa Meat), 알레프팜스(Aleph Farms), 멀투스(Multus), 킵스터(Kipster), 로열 쿠이퍼스(Royal Kuijpers) 등으로, 농업과 첨단 식품 기술을 아우르는 다국적 협력 체계가 마련됐다.
CRAFT 모델은 단순히 새로운 식품을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 농부들이 기존 축산업과 병행해 배양육 생산을 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생산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물과 토지 사용량을 크게 줄이고 사회적 비용까지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리스펙트팜스 측은 배양육 전환을 통해 물 사용량 78%, 토지 이용 95%, 사회적 비용 56%를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핵심은 ‘농부 주도, 지역 기반’의 생산 방식이다. 기존 농업 구조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기보다 새로운 기술을 점진적으로 도입해 농가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다. 이를 통해 배양육이 기존 농업의 대체재가 아니라 협력 가능한 새로운 산업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리스펙트팜스의 공동 설립자인 랄프 벡스는 “농업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을 토대로 신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CRAFT의 기본 철학”이라며 “이 프로젝트는 시장 진입을 앞당기고 실제적인 영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세계적 문제를 농장 규모로 축소해 해결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후 성과를 확장해 세계에 기술을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축산업의 환경적 문제는 오래전부터 국제사회가 지적해온 사안이다. 온실가스 배출과 자원 고갈, 오염, 생물다양성 훼손은 물론, 동물 복지와 건강 문제까지 다양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 특히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식량 체계 전반에 걸친 전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영국 농부들 또한 배양육 생산자와의 협력 가능성을 언급하며, 산업 변화에 발맞추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농업 부산물의 재활용은 배양육 생산을 더욱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안으로 꼽히며, 농가와 신산업 간의 협력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CRAFT 프로젝트에 참여한 킵스터와 리스펙트팜스의 공동 설립자 루드 잔더스는 “현재 수준의 동물성 제품 소비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며 “동물과 인간,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농가에도 미래를 보장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그 해답이 바로 배양육 농장”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되는 이번 시도는 향후 전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농업 전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사례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