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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건리뷰] 채식의 역사가 깃든 '사찰음식', 한식의 정수를 뽐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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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실천하기 이전의 삶을 떠올려 보면 ‘채식’은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다. 절에서 스님들이 불교 경전에 쓰인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기 위해 지키는 고된 수행 정도로만 여겼다. 채식이 산속 깊은 곳에서 사는 삶이나 삭발, 승복보다 더 대단해 보였을 정도다. 평생 고기를 포기하면서 승려의 삶을 살아가는 깊은 불심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불교역사는 1700여 년에 이른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채식의 역사도 그만큼 오래됐다는 얘기다.

 

불자의 영역으로 여겼던 채식이 오늘날에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채식인구도 150만명을 넘어섰다. 완전 채식은 아니더라도 육식을 지양하는 플렉시테리언, 비건지향인도 늘고 있다. 이에 채식의 원조격인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는 추세다.

 

사찰음식은 전국 각지의 사찰 근처 전문식당이나 템플스테이 등을 통해 맛볼 수 있다. 특히 서울에서는 종로구에 위치한 조계사 주변에 다수 사찰음식점이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사찰음식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직접 운영하는 사찰음식 전문 레스토랑을 방문해 봤다. 종로 ‘발우공양’의 한정식은 봄·여름·가을·겨울 각 계절에 맞는 제철 식재료로 구성된다. 이날 상차림은 봄메뉴 원식(願食)으로 주문했다. 

 

 

가장 먼저 에피타이저와 죽, 물김치가 상에 올랐다. 코스 내내 서버가 음식의 먹는 순서와 방법, 재료, 조리방법 등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에피타이저는 복분자청에 절인 방울토마토다.

 

 

평소 토마토를 즐겨 먹는데 이런 맛이 나는 토마토는 난생처음이다. 적당히 달콤한 토마토와 복분자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성긴 껍질은 제거하고 보드라운 속 알맹이만 먹기 때문에 입에 넣자마자 녹아 없어진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새콤하고 상큼한 한입 방울토마토가 단숨에 식욕을 돋운다. 

 

바로 따끈한 죽을 한술 떠서 입에 넣자 고소한 참기름과 쌉싸름한 봄 향기가 퍼진다. 이날 준비된 봄나물죽은 쑥과 두부가 들어가 뭉근한 식감에 향긋한 봄 내음이 여실했다. 시원한 물김치와 함께 먹기 딱 좋게 심심한 간이다.

 

이어 △상미(봄나물두부경단·더덕봄나물무침·봄나물청포묵냉채) △담미(모듬버섯강정·연근초절임·산초우엉조림·모듬전) △승소(표고버섯냉면·사찰만두) △유미(연잎밥·제주푸른콩된장찌개·봄나물 2종·사찰김치 2종·장아찌)가 차례로 제공된다.

 

 

 

봄나물두부경단은 두부에서 쫄깃한 식감을 맛볼 수 있어 이색적이다. 향긋한 봄 내음을 만끽할 수 있는 더덕봄나물무침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직접 쑨 청포묵으로 만든 냉채는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별미다.

 

 

 

전체적으로 음식이 보기에 익숙하지만 처음인 듯한 맛이다. 또 모르고 먹으면 식사 중에 고기가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특히 사찰만두는 일반적인 고기만두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쫄깃한 피와 촉촉한 속, 감칠맛을 자랑한다.

 

 

육수 대신 채수로 맛을 낸 표고버섯냉면은 일반적인 냉면보다 산뜻하면서 깊이가 있다. 유미식에서 제공하는 반찬은 나물로 구성돼 일반적인 한식과 유사한데 간이 센 편이다. 불교에서 금하는 오신채의 일종인 마늘이 빠져 소금간을 가미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후식으로는 봄 약쑥차와 금귤이 들어간 과편이 제공되는데 이날 서비스로 수리취떡까지 맛볼 수 있었다.

 

 

두 일행과 함께한 발우공양 만찬은 맛은 물론 모든 면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조용하고 쾌적한 실내 룸구조에 탁 트인 창문 밖 뷰도 갖추고 있다. 음식의 모양새도 먹음직스럽고 담아내는 식기도 정갈해 고급스럽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로 선택해도 충분한 공간과 음식, 서비스를 구비했다. 이날 시식자들의 총평에서는 발우공양의 사찰음식 한정식이 채식의 고급화를 견인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프로필 사진
심현영 기자

설핏한 빛줄기 속 먼지의 바스러짐을 직시하고 거친 굉음 속 작은 숨결에도 귀 기울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