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최유리 기자] 버섯은 흔히 별미나 보충 식품 정도로 여겨지지만, 영장류의 먹이 습성과 인류 진화사를 비추는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탄자니아 서부 이사 밸리에서 진행된 장기 관찰 조사에 따르면 침팬지, 붉은꼬리원숭이, 개코원숭이 등 세 종의 영장류가 정기적으로 버섯을 섭취하며, 그 방식과 시기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에콜로지 앤드 이볼루션’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약 20년간 동아프리카 사바나-삼림 지대에서 영장류의 생활상을 추적해왔다. 이 지역은 숲보다 기온이 높고 초지와 삼림이 혼재된 환경으로, 포식자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연구진은 종 간 경쟁이 어떤 방식으로 조절되는지에 주목했으며, 특히 과일 자원이 부족할 때 대체 식품으로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핵심이었다. 그 과정에서 버섯이 단순한 우연적 먹이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식품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4년에 걸쳐 5만 건이 넘는 먹이 행동을 분석한 결과, 침팬지와 붉은꼬리원숭이는 주로 우기에 버섯을 섭취했으며 전체 식단의 약 2%를 차지했다. 이들에게 버섯은 과일이 부족할 때 일시적으로 의존하는 보충 자원이었다.
반면 개코원숭이는 전혀 다른 패턴을 보였다. 1년 중 절반 정도만 버섯을 구할 수 있는데도 식단의 10% 이상이 버섯으로 채워졌고, 일부 시기에는 무려 35%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개코원숭이가 버섯을 선호 식품으로 선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생태적 지위 분할(niche partitioning)’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서로 다른 종이 경쟁을 줄이기 위해 각기 다른 먹이를 활용하는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사 밸리에서는 침팬지와 원숭이가 과일 부족기에 버섯으로 공백을 메우고, 개코원숭이는 아예 주된 식품으로 삼으면서 먹이 갈등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공존을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인류 진화사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사 밸리의 환경은 인류 조상이 진화한 것으로 알려진 모자이크형 삼림 지대와 유사하다. 오늘날 영장류가 이곳에서 버섯을 적극적으로 섭취한다면, 아우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 하빌리스 등 초기 인류 역시 버섯을 식단에 포함했을 가능성이 크다.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에서 약 4만 년 전 버섯 DNA 흔적이 발견된 사례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버섯은 화석으로 남기 어렵고 고고학적 기록이 부족해 고대 식단 연구에서 오랫동안 간과돼왔다.
연구진은 또 다른 함의로 인간과 야생동물의 자원 경쟁 문제를 지적했다. 탄자니아에서는 주민들이 야생 버섯을 채취해 시장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로 자원 압박이 커지면 사람과 동물 사이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연구팀은 “누가 언제 무엇을 먹는지 이해하는 것은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는 데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단순히 영장류의 식단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기원과 미래 생태 관리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본다. 버섯은 단백질과 미량 영양소, 약리적 효능까지 갖춘 식품으로, 인류 진화 과정에서 생각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생물다양성과 식량 안보가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버섯 같은 숨은 자원을 어떻게 다루고 공유할지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