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류 섭취를 제한하는 사람들은 채식주의자(vegetarian)로 지칭하지만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육식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고기를 먹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주의자'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어서다. 오히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본인이 육식주의자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식습관을 왜 신념적 잣대로 특정짓느냐는 거다. 그런데 사실 고기를 먹는 식습관에도 특정 잣대와 가치, 주관적인 신념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이 채식주의자가 개인의 윤리적 성향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에 채식주의자에 대해 고기를 먹지 않을 뿐이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채식주의가 곧 특정한 철학적 관점을 내포한다는 사실로 당연스럽게 여겨진다는 의미다.

채식주의를 단순히 음식에 대한 기호가 아닌 삶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미디어에서 채식주의자를 묘사할 때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넘어 자연을 사랑하거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나타내곤 한다.
그런데 고기 먹는 일을 비윤리적이라고 믿는 사람을 채식주의자라고 한다면, 고기를 먹는 일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채식주의자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면 고기를 먹는 쪽을 선택한 사람은 뭐냐는 말이다.

영어권에서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일컫는 말은 ‘미트 이터(meat eater)’다. 채식주의자는 식물을 먹는 사람 즉, ‘플랜트 이터(plant eater)’가 아닌 베지테리언이라는 ‘주의자’ 접미사를 사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고기 먹는 일이 당사자의 신념이나 가치관과는 무관하다는 인식을 대변한다. 즉, 고기 먹는 자체를 신념체계 밖에서 이해한다. 심지어 채식주의자의 반의어로 육식주의자라는 표현을 쓰는 일을 비판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애당초 당연한 행위에 어떻게 ‘주의’를 붙이냐는 것.

그렇다면 고기 먹는 일이 정말 신념체계와는 별개의 행위일까.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하다. 이를테면 개고기를 떠올려 보자. 개는 먹지 않고 돼지는 먹는 것이 신념체계가 없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나름의 잣대와 주관, 가치관을 지녔다. 또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이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개는 친구고 소, 돼지는 식량이냐"고 반박한다. 분명히 주관이 포함된 신념체계적인 행위다.
아울러 산업화로 풍요로워진 세계 각국에서 육식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 '선택'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생존은 물론 건강에도 고기가 필수는 아니다. 수백만명 장수한 채식주의자들이 증명해 왔다. 우리가 동물을 먹는 것은 단지 늘 그래 왔기 때문이며 그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원래 먹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먹는다.
이처럼 우리는 고기 먹는 일과 채식주의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 채식주의는 선택이고 육식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위다. 이는 육식주의의 비가시성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100억 마리 동물이 도살되지만 우리 대부분은 식육의 생산 과정을 부분적으로도 본 적이 없다. 이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다. 이는 우리가 먹는 고기에 대해 진정으로 숙고하면서 우리 음식 취향이 자연스럽고 순수한 선호만으로 결정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만으로 우리가 돼지는 먹으면서 개를 먹지 않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