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최유리 기자] 반려견에게 어떤 사료를 선택하느냐가 기후 위기 대응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발표된 국제 학술지 논문은 영국에서 판매되는 반려견용 건사료를 대상으로 한 환경 영향 평가에서, 동물성 원료보다 식물성 원료를 기반으로 한 사료가 모든 지표에서 더 낮은 환경 부담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는 반려동물 산업이 기후 대응 전략의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 프런티어스(Frontiers in Sustainable Food Systems)’에 실렸으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31종의 건사료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사료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식물성 사료, 닭을 주원료로 한 가금류 사료, 소와 양을 원료로 한 적색육 사료, 그리고 신장 질환 치료용 수의학적 처방식이다. 각 제품은 생애주기평가(LCA) 방식을 통해 토지 이용, 온실가스 배출, 담수 사용량, 산성화 배출, 부영양화 배출 등 다섯 가지 환경 지표로 비교됐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원료 구성, 에너지 밀도, 수분 함량 차이도 함께 보정해 수치를 도출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식물성 사료는 전 부문에서 가장 낮은 환경 부담을 기록했고, 반대로 소·양 기반 사료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예컨대 1000kcal의 건사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 면적은 소고기 사료가 102.15㎡에 달했지만, 식물성 사료는 고작 2.73㎡였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소고기 사료는 31.47kg CO₂eq으로 측정된 반면, 식물성 사료는 2.82kg CO₂eq에 그쳤다. 또한 소·양 사료는 산성화 배출이 7.1배, 부영양화 배출은 16.4배 더 높아 식물성 사료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연구진은 “동물성 반려동물 사료의 생산은 식물성 사료에 비해 훨씬 큰 환경적 부담을 유발한다”며 “반려동물 사료에 식물성 원료를 더 많이 포함하는 것은 산업 전반이 환경 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주요 기회”라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사료 선택 차원을 넘어, 반려동물 사료 시장이 기후 대응 전략의 전선으로 떠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같은 학술지에 지난해 발표된 연구도 유사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해당 연구는 반려동물에게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비건 식단을 제공하는 것이 즉각적인 기후 변화 완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반려동물 보유율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개의 식단 전환만으로도 인류 식단 변화로 얻을 수 있는 환경적 효과의 4분의 1~3분의 1을 실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건강상의 이점도 보고되고 있다. 2024년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식물성 식단을 섭취한 개가 육류 기반 사료를 먹는 개보다 건강 지표에서 더 나은 성과를 보였으며, 특정 질환 발생 위험도 50% 이상 낮았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영국수의사협회(BVA)는 지난해 입장을 수정해 “개에게 식물성 식단을 급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육류 중심 식단을 고수해야 한다는 기존 견해에서 중요한 전환을 이룬 셈이다.
이번 연구는 반려동물 사료 시장이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해결책 중 하나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려동물은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마리에 이르며, 이들의 식단은 축산업과 직결돼 지구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사료의 선택이 반려견 한 마리의 건강을 넘어 지구의 미래에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식물성 사료는 단순한 대체재를 넘어 지속가능한 반려동물 문화를 위한 핵심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