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유럽 전역의 야생 꿀벌이 역사상 처음으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과학자들은 이번 결정을 단순한 생물 보전 이슈가 아닌, 인류 생존과 직결된 생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럽의 야생 꿀벌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Red List)에 새롭게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됐다. 이는 유럽 대륙에서 해당 종이 공식적으로 멸종 위기 판정을 받은 첫 사례로, 전문가들은 이를 생태계 전반의 균열을 알리는 중대한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이번 지정은 유럽 전역에서 서식하는 꿀벌(학명 Apis mellifera)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한 사실이 최근 과학계 조사 결과로 확인되면서 내려졌다. IUCN은 꿀벌의 급감이 오염, 기후변화, 농약 사용, 서식지 파괴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서양 꿀벌은 오랜 세월 인간과 공존해온 대표적인 곤충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현대 양봉 산업에 이르기까지 인류 식량 체계와 깊이 연관돼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종은 인간의 관리 하에 보호되는 ‘사육 꿀벌’과, 자연 속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야생 꿀벌’로 나뉜다. 연구자들은 그중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야생 꿀벌이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몇 년간 유럽 각지의 과학자들은 숲과 공원, 도시의 틈새 공간에서 야생 꿀벌 군락을 발견해 이들의 생존력을 관찰해왔다. 하지만 장기간 연구 끝에 확인된 사실은 이들이 인간의 지원 없이 스스로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꿀벌은 서식지 상실, 농약 노출, 질병과 기생충 감염, 그리고 사육 꿀벌과의 유전적 교배로 인해 점차 약화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관리되는 양봉장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야생 꿀벌의 서식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과학자들은 이미 일부 지역에서 전통적인 벌집이 사라지고 있으며, 대체 서식지를 찾지 못한 꿀벌들이 생존에 실패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캐나다 연구진이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어스 앤드 엔바이런먼트(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유럽과 북미 전역에서 폭염, 가뭄, 산불 등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꿀벌의 생존 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산불로 인한 연기 속 미세입자와 대기 오염 물질은 꿀벌의 비행 능력과 먹이 활동을 방해하며, 이는 전체 개체군의 번식과 성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대기 중 오염 물질이 일정 농도 이상 존재할 경우 꿀벌과 같은 곤충의 생리적 기능이 손상된다”며 “이는 단순히 한 종의 문제가 아니라, 식물 수분 체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꿀벌은 세계 식량 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담당하는 주요 수분 매개자로, 이들의 감소는 농업과 생태계 모두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과학계는 이번 ‘멸종위기종’ 지정이 단순히 한 종의 보전이 아닌, 인류의 식량안보와 환경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야생 꿀벌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서식지 복원과 농약 사용 제한, 생태 보전 정책 강화 없이는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