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이용학 기자]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 사회봉사명령 이행자들이 농촌 일손 돕기 현장에 투입되며, 온열질환에 노출될 우려가 커지면서 인권 침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보호관찰소는 봉사활동의 일시 중단을 검토 중이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봉사명령은 피감독자(법원의 명령에 따라 보호관찰소의 감독을 받는 사람)가 일정 기간 공익활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무부와 각 지역 보호관찰소는 매년 하절기 농촌 지역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들을 농가에 배치하고 있으며, 특히 고온다습한 비닐하우스 내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비닐하우스 내부는 외부보다 기온이 5~10도 이상 높아질 수 있어, 온열질환에 특히 취약한 환경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7월 7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총 977명이며, 7일 하루에만 98명이 발생했다. 올해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온열질환은 고온다습한 환경에 장시간 노출될 때 인체의 체온 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급성 질환이다. 열탈진, 열실신, 열사병 등이 대표적이며, 방치할 경우 의식 저하, 장기 손상 등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특히 열사병은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올라가며 혼수, 발작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데, 고령자나 만성질환자 등 건강 취약계층은 더욱 높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서울남부보호관찰소는 오는 21일부터 농촌 일손 돕기 활동의 일시 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폭염에 따른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어, 당분간 농작업 봉사에 대한 배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활동 중인 봉사자들도 제도의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강서구에 거주하며 강서농협을 통해 농촌 일손 돕기에 참여 중인 사회봉사명령 이행자 A씨는 “좋은 농가주가 대다수다. 하지만 일부 농가에서는 정해진 양이나 목표를 꼭 채우려는 분위기가 있어 부담을 느낄 때도 있었고, 제도가 무리하게 활용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공익적 목적과 현장 안전 간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찰대 출신 변호사 A씨는 “사회봉사명령은 공익적 목적을 갖고 있으나, 생명·건강과 충돌할 경우 활동 중단이나 대체 조치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봉사자들에게는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의 작업 제한, 꾸준한 수분 섭취, 통풍이 잘되는 복장 착용 등 기본적인 열사병 예방 수칙을 사전에 교육하고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폭염이 일상이 된 이상기후 시대, ‘공익 봉사’라는 명분이 피감독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점검과 실효성 있는 개선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