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뉴스=김민영 기자] 지구의 바다는 뜨거워지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은 이미 산호초의 한계를 넘어섰고, 그 결과 전 세계 곳곳에서 백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때는 수십 년에 한 번 일어나는 드문 사건으로 여겨졌던 백화 현상은 이제 매년 반복되며 강도를 더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생명력이 가득했던 산호초는 점차 하얗게 탈색되고, 서식지를 잃은 해양 생물은 줄어들고 있다.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 바다 생태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산호초는 단순히 바다 속 경관을 이루는 존재가 아니다. 수많은 어류의 번식과 성장을 지탱하며 수백만 명의 식량 자원이 되고, 관광 산업을 이끌어 지역 경제를 살린다. 또한 해안선을 따라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며 태풍과 폭풍 해일로부터 인간의 삶을 보호한다. 산호초의 붕괴는 곧 인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하지만 기존의 복원 방식은 속수무책에 가깝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눈을 돌렸고, 그 과정에서 ‘슈퍼 산호’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교 연구팀은 대보초 인근 맹그로브 석호에서 특별한 산호를 발견했다. 이곳은 대부분의 산호라면 버티기 힘든 극한 환경이다. 낮은 산소 농도, 큰 일교차, 매일 달라지는 염도는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다. 그러나 이 산호들은 그런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번성한다. 연구진은 이들이 가진 비범한 회복력이 다른 산호초 복원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확인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맹그로브 산호를 불과 1km 떨어진 인근 산호초로 옮겨 1년 동안 관찰했다. 환경은 훨씬 안정적이었지만, 뜨거운 수온에 직면했을 때 이 산호들은 여전히 강한 내성을 보여줬다. 마치 극한의 석호를 떠난 적이 없는 듯 회복력을 발휘한 것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 슈퍼 산호는 DNA 복구와 대사, 항상성 유지에 관련된 경로를 활성화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적응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내재된 특성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맹그로브 석호가 일종의 훈련장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극심한 변화를 매일 겪으며 산호의 유전자 발현 체계가 끊임없이 단련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슈퍼 산호는 DNA 메틸화 패턴이 안정적이어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내열성 조류인 두루스디니움 속과 공생하며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했다.
이러한 특징은 산호초 보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농업에서 가뭄에 강한 품종이 식량 안보를 지켜온 것처럼, 내열성 산호가 산호초의 지속성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관광과 어업에 동시에 의존하는 지역은 슈퍼 산호의 도입으로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슈퍼 산호는 골격이 약해 장기적인 산호초 구조 형성에 한계를 드러낼 수 있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서는 적응 실패 가능성도 존재한다.
연구를 이끈 크리스틴 로퍼 박사는 “슈퍼 산호는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위험과 이익을 철저히 분석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슈퍼 산호는 당장의 위기를 늦출 수 있을 뿐, 기후 위기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해수 온도가 계속 상승한다면 결국 가장 강한 산호조차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산호초는 해양 생물의 4분의 1을 지탱하며 인류 경제에도 막대한 기여를 한다. 이들이 사라질 경우 그 피해는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될 것이다. 슈퍼 산호는 산호초와 인류에게 더 많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해법은 탄소 배출을 급격히 줄여 기후 위기를 막는 데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